박정희역, 노무현역 생길 수 있을까…‘박정희생가역’ 개정 요청

입력 2023-05-17 06:00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1일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경북 구미시가 사곡역을 ‘박정희생가역’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역명 개정에 나섰다. 국가철도공단이 적정성 검토를 한 뒤 국토교통부 역명심의위원회를 거쳐야 최종 결론이 난다. 다만 정부는 난감한 기색이다. 지금까지 정치인 이름을 역명에 넣은 전례가 없었던 데다 박정희생가역이 생기면 역대 대통령 생가역도 개정 요청이 우후죽순 일 것이란 우려에서다.

구미시는 지난 1일 철도공단에 사곡역을 박정희생가역으로 개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정희역’ ‘박정희생가역’ ‘새마을역’ 등 시민 의견을 수렴해 시 지명위원회가 역명을 결정했다. 사곡역 인근에는 박 전 대통령 생가가 있다.

경부선 간이역이었던 사곡역은 내년 말 대구권 광역전철역 개통이 계획돼 있다. 대구권 광역철도 사업은 구미에서 대구, 경산까지 61.85㎞를 연결하는 데 1857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고 있다. 구미시는 철도 개통에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철도공단과 국토부에 역명 개정 필요성을 지속해서 설명한다는 계획이다.

국토부 고시 ‘철도 노선 및 역의 명칭 관리지침’을 보면 역명 제정 기준은 ‘국민이 이해하기 쉽고 부르기 쉬우며 그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다. 행정구역 명칭이나 역에서 인접한 공공기관 또는 공공시설, 국민이 인지하기 쉬운 지역의 대표명소, 대학교명 등이 기준이다. ‘특정 단체 및 기업 등의 홍보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역명은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지침도 있다.

역명 관리지침에는 ‘해당 지방자치단체 주민의 반대 등의 사유로 갈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등 개정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요청기관(법인 또는 단체 포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정치인이나 특정인에 대한 이름을 쓰지 말라는 규정은 없지만,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박정희생가역 개정 요청이 거절될 수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와 가까운) 진영역이 노무현 생가역이 되지 않은 것처럼 사곡역이 박정희생가역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KTX 정차역도 아니고 전철역에 이런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정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예우하는 사람이라면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미국 최대의 국제공항인 뉴욕 JFK국제공항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따왔고, 유럽대륙 최대의 관문으로 통하는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도 마찬가지”라며 “우리나라도 국민적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역명이나 공항명으로 남기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