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모가 있음에도 고아라고 속여 한국인 아이를 국외로 입양 보낸 홀트아동복지회(홀트)에 대해 불법 입양을 인정하고 입양인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재판장 박준민)는 16일 신송혁(46·애덤 크랩서)씨가 홀트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정부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신씨는 3살 때인 1979년 미국에 입양됐지만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를 받다 파양됐다. 12세 때 다시 입양됐으나 두 번째 양부모에게서도 학대받다 16세 때 파양됐다.
신씨는 성인이 되도록 시민권을 얻지 못하다가 2014년 영주권 재발급 과정에서 청소년 시절 경범죄 전과가 발각돼 2016년 추방됐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입양 과정에서 신씨의 친부모가 있는데도 가짜로 기아호적(고아호적)을 만들어 해외로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이름도 본명 ‘신성혁’이 아닌 ‘신송혁’으로 기재됐다. 기아호적을 만들면 친부모 동의 절차가 생략되는 등 입양 절차가 쉬워진다.
신씨는 2019년 정부와 홀트아동복지회에 2억여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홀트의 책임만 일부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신씨는 미국에 있는 자녀들과 가까이 있기 위해 머무는 멕시코로 돌아가 이날 재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씨 소송대리인 김수정 변호사는 선고 후 기자들과 만나 “홀트의 불법 책임을 인정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며 “불법 해외 입양을 주도해 관리하고 계획·용인한 국가 책임이 인정되지 않아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의 책임이 인정되지 않은) 오늘 판결로 신씨에게 또 하나의 절망을 안긴 게 아닐까 안타깝다”며 “국가가 먼저 사과하고 다시 돌아가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신씨와 논의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