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흥건한데…경찰이 외면” 흉기난동 피해 가족 오열

입력 2023-05-16 04:47 수정 2023-05-16 09:55
사건 당시 경찰관을 밀치고 올라가는 '흉기난동' 피해자 40대 여성의 남편. 연합뉴스

2021년 인천에서 발생한 ‘층간소음 흉기난동’의 피해자 가족이 부실 대응으로 해임된 전직 경찰관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인천지법 형사17단독 이주영 판사는 15일 오후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된 전 경위 A씨(49·남)와 전 순경 B씨(25·여)의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피해자 40대 여성의 남편 C씨와 딸 D씨가 증인으로 나섰다.

남편 C씨는 “경찰관들이 밖에 있는 사이 제가 칼등으로 범인을 기절시켜 제압했더니 뒤늦게 경찰관들이 올라왔다”며 “경찰관들은 범인을 데리고 내려가면서 바닥에 흥건한 아내의 피를 밟지 않으려고 피했다. 위급한 아내를 같이 데려가 달라는 애원도 무시했다”고 오열했다.

C씨는 당시 경찰관 중 A씨가 (가해 남성과 분리하고자) 자신을 데리고 빌라 밖으로 나온 지 3분 만에 사건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딸의 비명에 A씨와 현장에 급하게 올라가니 “칼, 칼, 칼”을 외치며 현장을 벗어나는 B씨와 마주쳤고, A씨는 B씨와 (현장을 벗어나) 빌라 밖으로, 자신은 아내와 딸이 있는 현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와 달라는 요청을 무시하던 피고인 A씨의 악마 같은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뒤에서는 자기가 범인을 잡았다며 자랑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가해 남성을 체포할 때 아내를 함께 데리고 내려가 줬더라면 더 빨리 이송돼 뇌가 괴사되거나 2분간 심정지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딸 얼굴의 상처는 평생 남는다고 하고, 정신병동 입원 치료도 권유받을 정도로 현재까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며 “비겁한 경찰들이 조직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법이 허락하는 최고의 형을 내려주셔서 가족이 조금이나마 위안받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B씨 측 변호인이 ‘증인만 따로 1층으로 내려가면서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냐’고 묻자 C씨는 “설마 경찰이 있는데 그렇게 해코지하겠나 생각했다. 아무 생각 없이 경찰을 믿었다”고 답했다.

지난해 4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CCTV 영상. 뉴시스

딸 D씨는 “당시 B씨를 가운데 둔 상태에서 범인이 어머니의 목 부위를 흉기로 찔렀다. 제가 바로 범인의 손을 붙잡았고, B씨는 ‘119 불러야 한다’며 밑으로 내려갔다”면서 “제가 ‘사람 살려’라고 크게 비명을 지르고 경찰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아버지(C씨)만 올라왔다. 아버지와 함께 범인을 제압하느라 흉기에 찔린 어머니를 제대로 지혈하지 못했다”고 오열했다.

그는 “울부짖고 소리 질러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피고인 중) 누구라도 빨리 왔어야 했다”며 “범인을 제압한 뒤에 피고인들이 나타났기에 아버지가 ‘왜 이제야 왔냐, 이제 오면 어떡하냐’고 했다. 피고인들은 그제야 테이저건을 쏘고 삼단봉을 펼치더니 범인을 데리고 나갔다. 자칫 잘못하면 저와 아버지도 위험할 수 있었던 상황”고 토로했다.

A씨와 B씨는 2021년 11월 15일 인천시 남동구 빌라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사건 당시 현장을 이탈하는 등 부실하게 대응해 직무를 유기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빌라 4층에 살던 E씨가 3층 거주자인 40대 여성에게 흉기를 휘두를 때 삼단봉, 테이저건, 방범 장갑을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범행을 제지하지 않거나 현장을 이탈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흉기에 목을 찔려 뇌수술을 받았고, C씨와 D씨도 얼굴과 손 등을 다쳤다.

사건 발생 후 A씨와 B씨는 성실의무 위반 등으로 해임됐지만 불복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앞서 공판에선 A씨 측 법률대리인은 “빌라 밖으로 나갔을 때 A씨는 안에서 벌어진 일을 알 수 없었다”며 “법리적으로 직무유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다만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B씨는 혐의를 인정했다.

이들의 다음 재판은 오는 7월 13일 오후 열릴 예정이다.

한편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흉기 난동 가해자 E씨는 지난 1월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