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훔치려고”…송유관 옆 모텔 통째로 빌려 땅굴 판 절도단

입력 2023-05-09 11:50 수정 2023-05-09 14:01
유류절도단이 송유관에서 기름을 훔치기 위해 모텔 지하실에서 판 땅굴. 대전경찰청 제공

기름을 훔치기 위해 송유관 인근 모텔을 통째로 빌리고 모텔 지하실에서 송유관까지 땅굴을 판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대전경찰청은 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 혐의로 유류절도단 8명을 붙잡고 이중 총책 A씨(58) 등 4명을 구속했다고 9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 1~3월 충북 청주에 있는 한 모텔을 통째로 빌린 뒤 이 모텔 지하실에서 송유관 매설 지점까지 땅굴을 파고 들어가 기름을 훔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지난해 5월부터 자금책과 석유절취시설 설치 기술자, 땅굴 파기 작업자 및 운반책 등 관련 전과가 있는 공범들을 모으며 범행을 계획했다.

일당 중 1명이 전직 대한송유관공사 직원이어서 송유관 매설지점 탐측, 석유절취시설 설계도면 작성 등이 가능해 보다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이들은 충북 옥천의 한 주유소를 범행 장소로 정하고 같은 해 10월 이 주유소를 임대했다. 주유소 인근 송유관까지 굴착을 한 뒤 직접 기름을 빼내 판매하려고 했다. 주유소와 송유관까지의 거리는 약 50m였다. 하지만 이 주유소는 땅을 팔 수록 물이 계속해서 나와 결국 굴착에 실패했다.

A씨 일당은 포기하지 않고 청주에 있는 한 모텔로 눈길을 돌렸다. 처음에 빌린 주유소와 달리 이번에는 10m만 파면 송유관에 닿을 수 있었다.

유류절도단이 송유관에서 기름을 훔치기 위해 모텔 지하실에서 판 땅굴. 대전경찰청 제공

이들은 월세 450만원에 모텔을 통째로 빌린 뒤 삽·곡괭이·호미 등으로 모텔 지하실 벽을 뚫기 시작했다. 땅굴은 가로 81㎝ 세로 78㎝로 사람 한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지반과의 거리는 3m에 불과했다. 땅굴 바로 위에 하루 평균 6만6000여대의 차량이 오가는 4차로 국도가 있었던 만큼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들 일당의 범행은 국정원이 경찰에 제보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검거 당시 이들은 약 9m를 파내 송유관 앞 30㎝ 지점까지 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송유관에 밸브를 설치하기 직전이어서 기름을 훔치지는 못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현장 적발 직후 대한송유관공사는 땅굴을 즉시 매립하고 지표면 포장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송유관에서 기름을 훔치는 범죄는 폭발이나 화재로 이어져 인적·물적 피해뿐 아니라 환경훼손 등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앞으로도 송유관 관련 범죄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