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0조 적자’ 한전, 민간발전사 손실까지 떠 안는다

입력 2023-05-09 05:50 수정 2023-05-09 05:50
정승일 한국전력공사사장. 연합뉴스

정부가 전력도매가(SMP) 상한제 시행으로 피해를 본 민간발전사에 대한 손실 보전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전력공사 예산으로 발전업계의 손해를 보상해 주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12월 SMP 상한제 도입 이후 정부가 구체적인 배상 조치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전은 SMP 상한제가 시행된 4개월 동안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절감했는데, 이 가운데 일부를 고스란히 민간발전사에 돌려줄 상황에 놓이게 됐다. 2분기 전기요금 인상안 발표가 미뤄지는 상황에서 30조원이 넘는 적자 사태를 겪고 있는 한전의 경영난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기위원회는 지난달 28일 ‘긴급정산상한가격 도입에 따른 연료비 손실보상을 위한 규칙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개정안은 SMP 상한제 도입 이후 빚어진 민간발전사의 손실액을 한전이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가 공기업 적자 해소를 위해 민간 기업에 고통 분담을 강제하고 있다는 발전업계의 지적을 수용한 셈이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지난 2일 개정안을 승인했다. 해당 안은 지난 4일부터 본격 시행됐고, 지난해 12월까지 소급 적용된다.

SMP 상한제는 한전이 민간발전사에서 매입하는 전력 도매가에 상한선을 두는 제도다. 직전 3개월간 전력도매가 평균이 최근 10년간 전력도매가 평균의 상위 10%보다 높으면 적용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3개월 간 SMP 상한제를 운영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전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상한제는 3개월을 초과해 연속 적용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지난 3월 운영을 멈췄다가 4월 들어 다시 적용됐다.

정부가 책정한 SMP 상한 가격은 킬로와트시(㎾h) 당 160원 수준이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SMP 상한제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월간 평균 SMP는 ㎾h 당 267.55원이었다. 상한제를 통해 한전은 민간발전사로부터 ㎾h 당 최대 100원 가량 싸게 전기를 구입해 왔다. 이를 통해 한전은 4개월 동안 수천억원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연합뉴스

그러나 SMP 상한제를 둘러싼 민간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전력거래소 통계를 보면 지난해 12월 한 달간 민간 발전사의 정산금은 약 6840억원 감소했다. 지난 2월까지 민간 발전사의 정산금은 약 2조1000억원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태양광발전협회 등은 지난 3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SMP 상한제 종료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기도 했다. 정부가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조치에 나선 것이다.

한전이 부담해야 할 배상액은 전력거래소의 민간발전사 피해 규모 산정 절차 이후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현재 산업부 전력시장과는 SMP 상한제가 시행된 4개월 간 민간발전사들이 1조원대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만 산업부 관계자는 “민간발전사의 피해액 전부를 다 보전해줄 수는 없다”며 “한전이 발전사에 지급하는 금액은 SMP 상한제로 한전이 절감한 비용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손해 배상 규모를 두고 발전업계와 정부가 다시 한번 충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가 SMP 상한제라는 임시방편에 기대어 전력 시장 개혁에 소홀했다는 비판도 있다.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1월 한전은 전기를 ㎾h당 164.2원에 구매해 147원에 판매했다. 17.2원씩 적자가 난 셈이다. 지난해 한전의 ㎾h당 전기 구입 단가는 155.5원 이었지만 판매 단가는 이보다 30원 가량 낮은 120.51원에 그쳤다. 전기를 싸게 사와도 더 싸게 팔기 때문에 손실이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역마진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이상 한전은 빚으로 손실을 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전은 오는 12일쯤 1분기 실적을 발표하는데, 1분기에만 5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전 관계자는 “정부 결정을 따르겠지만 민간발전사 손실까지 챙기기에는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