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횡령 숨기려 방화…3시간전 산 모자 때문에 잡혔다

입력 2023-05-05 08:11
지난 4월 2일 제주시 봉개동 한 공장 창고에 불씨 던지는 피의자. 오른쪽 사진은 방화 전날 제주시 한 마트에서 챙이 넓은 얼룩무늬 모자를 구매하는 모습. 제주동부경찰서 제공, 연합뉴스

회삿돈 2억원을 횡령한 사실을 숨기려고 자신이 근무하는 공장에 불을 지른 50대 남성이 구속됐다. 덜미를 잡힌 건 범행 당시 얼굴을 가리고자 쓴 모자 때문이었다.

제주동부경찰서는 제주도의 한 식품가공 공장에 불을 지른 혐의(현주건조물방화)로 50대 직원 A씨를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일 0시3분쯤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한 식품가공 공장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지난 4월 2일 제주시 봉개동 한 공장 창고에 불씨 던지는 피의자. 제주동부경찰서 제공, 연합뉴스

이 불로 공장이 전소돼 소방서 추산 10억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화재 당시 공장 2층 직원 숙소에 당직자 1명이 있었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공장 내 창고 CCTV를 통해 챙이 넓은 얼룩무늬 모자를 쓴 남성이 공장 1층에 있는 창고 창문을 통해 불씨를 던지는 장면을 포착했다. 이어 범행 시각을 전후해 공장 반경 1㎞ 내에서 운행했던 차량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차량 한 대가 공장에 주차한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은 이 차량을 평소 업무용으로 이용하던 직원 중 한 명인 A씨가 사건 3시간 전쯤 제주시 오라동에 있는 한 마트에서 챙이 넓은 모자를 구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해당 모자가 CCTV에 찍힌 피의자가 쓴 모자와 같은 것으로 파악한 경찰은 지난달 23일 A씨를 주거지 인근에서 검거했다.

지난 4월 1일 제주시 한 마트에서 챙이 넓은 얼룩무늬 모자를 구매하는 피의자. 제주동부경찰서 제공, 연합뉴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지난해 5월부터 최근까지 거래처로부터 받은 대금 약 2억원을 지인 계좌로 빼돌려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A씨가 횡령 사실을 감추기 위해 관련 자료가 있는 사무실 아래에 위치한 창고에 불을 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공장 외부에 CCTV가 다수 설치돼 있지만 공장으로 접근하는 모습이 CCTV 영상에 담기지 않은 점으로 미뤄보아 A씨가 범행 전 CCTV 사각지대를 파악해 두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판단했다.

A씨는 경찰에서 횡령한 돈을 생활비에 사용했다면서 횡령 사실을 인정했지만, 방화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