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거장 라트리 “오르간은 무엇이든 가능한 악기”

입력 2023-05-02 05:30
프랑스 출신의 오르가니스트 올리비에 라트리. (c)Deyan Parouchev

파이프 오르간을 가리켜 ‘한 대의 오케스트라’라고 한다. 건물 벽에 설치한 수많은 파이프들을 통해 약 20만 가지의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유럽 교회음악의 중심이 된 파이프 오르간은 근대 시대부터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에도 설치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28년 명동성당에 처음 들어선 이후 성당과 교회에 주로 설치됐다. 공연장으로는 1978년 세종문화회관에 처음 설치됐지만 다목적 공연장이라 소리에 한계가 있기도 했지만 파이프 오르간 콘서트의 기획 자체가 매우 적었다. 2016년 8월 개관한 롯데콘서트홀은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된 국내 첫 대형 클래식 콘서트홀이다. 개관 이후 다양한 파이프 오르간 관련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는데, 세계적인 오르가니스트들의 내한공연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롯데콘서트홀이 그동안 초청한 오르가니스트들 가운데 개관 이듬해인 2017년 내한한 프랑스 출신 올리비에 라트리(61)는 파이프 오르간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흐, 멘델스존, 포레, 생상스 등 대표 레퍼토리를 화려하게 연주한 것은 물론 애국가와 카카오톡 알림음을 토대로 한 즉흥연주로 관객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2018년엔 세종문화회관 초청으로 아내인 한국인 오르가니스트 이신영과 함께 내한해 파이프 오르간 솔로부터 듀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까지 다양한 매력을 보여줬다.

현존하는 최정상의 오르가니스트인 라트리는 불과 23세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전속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됐다. 현재는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세계 각국 공연장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는 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6년 만의 내한공연을 가지는 라트리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아내가 한국인이라 가족 방문차 그동안 한국을 여러 차례 왔었다. 하지만 연주로는 오랜만이기 때문에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피력했다.

프랑스 출신의 오르가니스트 올리비에 라트리. (c)Deyan Parouchev

이번 내한 공연에서 라트리는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중 1막 서곡을 비롯하여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발췌곡(이신영 편곡), 프랑크의 ‘오르간을 위한 영웅적 소품’, 비도르의 오르간 교향곡 제 5번 바단조 등 독일부터 프랑스에 이르는 다채로운 시대의 오르간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라트리는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항상 청중과 오르간, 그리고 내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오르간 음악의 뿌리가 깊은 프랑스 출신이기 때문에 늘 프랑스 작품을 연주하는데, 이번엔 이들 프랑스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바그너와 리스트의 곡도 포함시켰다”면서 “오르간의 음악 분야가 워낙 넓기 때문에 늘 해보지 않은 것에 도전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적 악기인 파이프 오르간이 현대에도 다채롭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라트리의 믿음이다. 그는 “오르간은 교회, 리사이틀, 오케스트라 공연, 합창단, 다양한 앙상블과의 콘서트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크로스오버에도 사용할 수 있는 복합적인 악기다. 오르간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나는 오르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2017년 첫 내한공연 당시 관객을 매료시킨 즉흥연주를 이번에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는 “즉흥연주는 매번 매우 큰 도전이라고 할 만큼 어렵지만, 청중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는 음악”이라며 “그 자리에서 작곡돼 마지막 음악이 끝나면 즉시 사라진다는 점에서 근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즉흥연주는 청중, 악기, 그 순간의 분위기에서 비롯된다. 이번에 어떻게 연주될지 두고 봐달라”라고 덧붙였다.

한편 라트리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2019년 12월 대화재가 난 노트르담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복구 경과도 전했다. 당시 화재에도 불구하고 오르간은 기적적으로 무사했다. 몇 달 동안 청소와 복원 과정을 거친 오르간은 현재 설치 작업 중이다. 그리고 내년 12월 8일 재개관식에서 대중을 상대로 연주가 열린다. 라트리는 “재개관 전 음색 조정 작업에 참여할 예정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대성당 건물이 오르간의 음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마치 즉흥연주처럼 기대가 된다”면서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인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곳이라는 것을 화재 후 반응을 보고 실감할 수 있었다. 복원 작업 이후에도 대성당이 예전같은 활력과 영적인 느낌을 가지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