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이지만 국제금융기구 속 위상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가장 정부 출자액이 많은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조차 단 한 번도 한국인 총재를 내지 못했다. 일본이 총재직을 독식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기존 선진국들이 만든 지분 구조를 후발주자가 비집고 들어가기 어렵다보니 발생한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한국이 지난해 말까지 가장 많은 자본을 출자한 국제금융기구는 모두 71억2000만 달러를 출자한 ADB다. 아시아 빈곤 퇴치를 위해 1966년 출범한 ADB에서 한국은 전체 지분의 5.0%를 출자했다. 일본(15.6%), 미국(15.6%), 중국(6.4%) 등에 이어 8번째로 비중이 높다. 덕분에 한국은 ADB 전체 투표권의 4.3%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만·스리랑카 등의 그룹을 대표해 영구이사국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이는 한국의 경제력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표다. 한국은 같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 중에도 인도(6.3%), 호주(5.8%), 인도네시아(5.4%)보다 지분이 적다. 그러다보니 총재직과도 거리가 멀다. 초창기부터 최대 출자자로 나선 일본은 출범 이래 10대째 총재직을 독식했다. 한국은 그간 ADB 부총재를 세 차례 배출했지만 이 마저도 2003년을 마지막으로 명맥이 끊겼다.
두 번째로 출자 규모가 큰 월드뱅크 산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도 상황이 비슷하다. 한국은 지난해 말까지 전체 지분의 1.7%인 52억7560만 달러를 IBRD에 출자했다. 지분율은 1.7%로 미국(16.4%), 일본(7.7%), 중국(6.0%) 등 기존 강대국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한국은 IBRD에서 이사 자리를 확보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국제금융기구 내 지분이 경제 성장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한 번 지분 구조가 굳어지면 확대하기 어려운 국제금융기구의 성격 탓이다. 두 기구는 모두 한국이 한창 개발도상국이던 시절 출범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한 시점에는 이미 지분 확대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증자를 하려면 다른 회원국이 자기 몫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는데, 지분이 곧 투표권인 기구 내에서 이를 포기하는 국가는 없다시피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존 선진국들이 투표권을 내주지 않다 보니 지분을 늘리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한국이 국제사회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선 ‘블루오션’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6년 중국 주도로 출범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모범 사례다. AIIB에서 한국은 7억5000만 달러를 출자해 전체 지분율 5위(3.9%)를 차지했다. AIIB 영구이사국 지위도 확보했다. 2013년 중미경제통합은행(CABEI)에 모두 6억3000만 달러를 출자해 CABEI에서 7번째로 큰 투표권을 확보한 것도 비슷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기재부 관계자는 “한국의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다방면으로 모색하고 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국제금융기구는 IBRD와 ADB”라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