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에서 생계형 펜션을 운영하던 고민정(70·강릉교회) 안수집사는 지난 11일 발생한 화마에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26일 전소된 펜션 앞에서 만난 고 집사는 전쟁터 같았던 화재 당시를 회고했다. “펜션 옆 대나무밭에서 대나무가 터지면서 따발총 소리가 났습니다. 점점 매캐한 냄새가 짙어지더니 불과 10분 만에 집까지 시뻘건 불이 번지더군요. 광풍 때문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다보니 온몸으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화재 발생 후 열흘이 넘도록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텐트를 치고 산 고 집사는 일주일 동안은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고 했다. 잠깐 눈을 붙이면 펜션이 불에 타는 꿈도 꿨다. 지금은 정부가 마련해준 펜션에 임시 거처를 잡았으나 화재 현장 근처여서 탄내가 진동한다. 그는 “언제까지 여기서 살아야 하는지 기약이 없다. 아내는 임시 거처에 들어오기도 싫어한다”고 했다.
최영주(43·여·병산그리스도의교회) 집사 역시 이번 화재로 집을 잃었다. 최 집사는 잿더미가 된 집터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서 있는 여기가 주방이에요. 그 옆은 아이들 방이고요….” 불에 타지 않은 건 현관문 앞 디딤돌뿐. 그의 목재 집은 전소됐다. 그는 “누군가 초가집이라도 지어서 내 집이라 해줬으면 좋겠다. 편히 쉴 곳이 없다”고 한탄했다.
화재 발생 후 한국교회는 피해 주민과 성도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강릉교회(이상천 목사) 성도들은 고 집사에게 후원금 300만 원을 건넸고 아레나에 찾아와 기도도 해줬다. 고 집사는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벅찼다”며 “펜션은 가정의 달과 여름 휴가 시즌이 대목이다. 수입이 끊기게 돼 앞이 캄캄했는데 교회 덕에 숨통이 트였다”고 고마워했다.
병산그리스도의교회(홍현표 목사)는 아레나에서 구호품을 나누는 봉사 활동을 하면서 짬이 날 때마다 최 집사를 위로했다. 아레나에 있다가 녹색도시체험센터로 임시 거처를 옮긴 후에는 조지연 사모가 이곳을 직접 오가며 빨래까지 해줬다. 최 집사는 “이곳까지 빨래 차가 오지 않아 세탁할 상황이 여의치 않았는데 나 때문에 동분서주하시는 사모님이 그렇게 고맙더라”고 말했다.
재해를 입은 교회가 더 큰 피해를 입은 이웃을 돕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만민의감리교회(홍영기 목사)는 이번 강풍 피해에 지붕이 날아가 천막을 쳐놓고 예배하면서도 강릉시기독교연합회(강기연·회장 심을터 목사)에 성금 30만원을 전달했다. 평균 연령 60세 이상인 성도 40명이 십시일반 모은 돈이었다. 울진과 속초기독교연합회도 각각 300만 원, 200만 원의 성금을 강기연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대표단장 김태영 목사)도 힘을 보탰다. 한교봉은 이날 강릉중앙감리교회(박태환 목사)에서 강기연에 산불 피해 복구 성금 4000만 원을 약정하고 성금을 전달했다. 김태영 목사는 “예수를 믿는 38가정이 피해를 봤다고 들었다. 생필품도 못 가지고 나온 이들 모두에게 100만 원씩 지원하기로 했다”며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가 섬기는 일에 하나가 되면 좋겠다. 성경 말씀처럼 우는 자와 함께 울어주는 교회가 되자”고 덧붙였다.
한국교회의 손길에 지자체도 감사의 뜻을 밝혔다. 김홍규 강릉시장은 “교회의 나눔은 이웃 사랑에 대한 본보기”라며 “이렇게 상부상조하는 마음이 있으면 재난을 훨씬 더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릉=글·사진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