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감독법도 못 막은 입찰 비리…평가 기준 개선 목소리 커지나

입력 2023-04-27 06:00
신월성원전 1호기. 연합뉴스

원전 비리 사태를 막기 위해 도입된 원전감독법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전감독법 시행 2년 만에 두 원전 공공기관이 연관된 입찰 비리가 발생했지만 전문가로 구성된 원전감독법 평가단은 두 기관에 대해 ‘공정한 경쟁기반을 조성했다’는 긍정 평가를 내렸다. 실효성 있는 원전 기관 실태 점검을 위해 평가 지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2015년 7월부터 원전감독법을 시행 중이다. 2013년 시험성적서 위조를 통한 대규모 원전 납품비리 사태가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원전 업계에 대한 관리 감독 체계를 강화해 원전 비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한전연료, 한전(원전수출 분야) 등 5개 원전 공공기관은 2년 마다 운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매년 계획 이행 여부를 담은 보고서도 산업부에 제출해야 한다.

산업부는 원전 관련 교수 등 전문가 20여명을 평가단으로 위촉하고 2018년과 2020년, 지난해 등 세 차례에 걸쳐 원전 공공기관이 제출한 보고서를 평가해 왔다. 에너지경제연구원과 법무법인 광장, 한국생산성본부가 각각 간사기관으로 참여했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평가단은 5개 원전 공공기관이 공정한 구매계약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지 여부 등을 중점적으로 검증하고 있다.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수의계약 비율을 적정 수준에 맞췄는지, 구매 전담조직을 독립적으로 운영했는지도 평가 기준이다. 평가단은 이를 위해 2~5달에 걸쳐 원전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기관들과 면담도 가졌다. 정부는 총 7825만원을 평가단 수당으로 지출했다.


문제는 원전감독법 도입 이후에도 원전 비리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전력기술 직원 A씨는 2017년 11월 신고리 5·6호기 폐수처리설비 입찰을 앞두고 경쟁업체가 낸 사업제안서를 평소 알고 지내던 B씨 등 2명에게 제공했다. A씨는 한수원 직원 C씨로부터 관련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A씨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경쟁업체보다 제안가격을 낮춰 한수원으로부터 120억원 규모의 공사를 낙찰 받았다. A씨는 퇴직 후 B씨의 업체에 고문으로 재취업했다. 법원은 2021년 A씨에 대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명백한 원전 비리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평가단은 사건 이듬해인 2018년과 1심 판결 직후인 2022년 ‘구매 계약’ 부문에서 한수원과 한국전력기술에 긍정 평가를 내렸다. 각 기관이 각자 제출한 운영계획에 따라 협력업체 정기평가 등을 실시했다는 이유에서다. 기존에 정해진 항목에만 집중하다보니 120억원 규모의 원전 비리가 발생했음에도 평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산업부는 해당 사건이 개인 일탈 차원이라 입찰이나 계약 시스템 정비를 다루는 원전감독법 대상이 되기에는 애매하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해 말 관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나왔는데, 3차 평가 이후 시점이라 반영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이후 6년이 지났는데도 관련 기관들이 세 차례나 원전 관리 긍정 평가를 받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원전 비리를 차단할 수 있는 평가 지표를 새로 개발하거나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