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소재 파악 없이 불출석 상태 선고…대법 “재판 다시 하라”

입력 2023-04-26 14:35

소재가 불분명한 피고인에 대해 추가적인 소재 파악 노력 없이 불출석 상태로 판결을 내렸다면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은 피고인의 주거, 사무소와 현재지를 알 수 없다고 단정해 곧바로 공시송달을 결정한 뒤 피고인의 진술 없이 판결했다”며 “피고인에게 재판 출석의 기회를 주지 않음으로써 소송절차가 법령에 위배돼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A씨는 2020년 2월 12일 인터넷 중고거래 카페에 마스크 160장을 27만5000원에 판매한다는 허위 게시글을 올린 뒤 연락한 피해자 2명에게서 55만원을 송금받아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그해 5월 28일에도 카메라와 렌즈를 판매한다는 허위 게시글을 올리고 피해자에게서 136만원을 송금받아 가로챘다. 1심은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동종 사기 사건으로 수감돼 있던 A씨는 교도소에서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그러다 형기 만료로 출소했고 이 사건 2심 재판은 불구속 상태로 받게 됐다.

2심 재판부는 A씨 주소지로 재판 출석을 요구하는 소환장 송달을 시도했으나 폐문부재(송달받을 장소에 사람이 없음)로 닿지 않았다. 소송 서류에 적힌 A씨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소환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1차 공판기일에 불출석하자 재차 소환장 송달을 시도했고 A씨 모친이 대신 전달받았다. 하지만 A씨는 2차 공판기일에도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재판부는 공시송달을 명했다. 공시송달은 재판 당사자 소재를 알 수 없는 경우 법원 홈페이지에 일정 기간 게시해 이를 소환장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공시송달 후에도 A씨는 3~4차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는 피고인 출석 없이 재판을 개정해 소송절차를 진행한 뒤 1심 판결을 깨고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A씨가 피해자들에게 가로챈 돈을 전부 변제한 것으로 보이는 등 사정을 감안해 벌금 액수를 낮췄다.

대법원은 2심 재판부의 공시송달 결정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A씨의 2차 공판 불출석 후 곧바로 공시송달할 게 아니라 다시 기일을 잡고 소환장 송달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차 공판 소환장을 A씨 모친이 적법하게 수령했기 때문에 원심이 피고인 진술 없이 판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기일을 정해 피고인에게 공판기일 소환장을 전달했어야 했다”며 “공시송달 결정 전 정식재판청구서에 기재된 A씨의 다른 연락처로 전화해 그의 소재를 파악하거나 송달받을 장소를 확인하는 등 소재 파악을 위한 추가 조치를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