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규제’ 외친 정부서 잉태된 전세 사기 [스토리텔링경제]

입력 2023-04-26 06:01

인천 미추홀구를 넘어 전국에서 대규모 전세 사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기 피해의 씨앗이 문재인정부 때 이미 잉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차인 보호와 다주택자 규제에 초점을 맞췄던 부동산 정책이 오히려 ‘악성 임대인’을 늘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2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세 사기 피해 지원 범부처 태스크포스(TF)는 27일 ‘전세 사기 특별법’을 발표할 계획이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수천 가구 규모의 전세 사기 피해가 발생한 미추홀구에서 피해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이어지자 정부가 뒤늦게 본격적인 대처에 나선 모양새다.

전세 사기 범죄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지난해부터다. 미추홀구 전세 사기를 주도한 남모(61)씨를 비롯해 김모씨, 권모씨 등 대표적인 악성 임대인들은 극단적인 갭 투자로 수천 가구의 빌라를 보유해 ‘빌라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들이 주택을 대량으로 매입한 시기는 대개 2021년 전후였다. 이들이 출몰할 수 있는 환경은 그 때 이미 조성돼 있었다는 뜻이다.

‘다주택자 규제·임차인 보호’의 역설
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 기조는 임차인 권리 증진과 다주택자 규제를 앞세운 ‘주택 공공성 확대’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정책은 전셋값을 끌어올리고 악성 임대인을 탄생시켰다. 전세 사기가 성행할 수 있는 토양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정책이 2020년 7월 시행된 임대차 3법이다. 이 법은 본래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해 전세 계약 기간을 2년에서 4년(2년+2년)으로 늘리고 인상률에 상한을 둬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출범했다. 하지만 4년간 전셋값을 올리지 못하게 된 집주인들은 신규 계약 때부터 금액을 일찌감치 올려 부르며 정부의 기대를 배반했다. 결과는 전셋값 폭등이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부터 임대차 3법 시행 직전인 2020년 7월까지 전국 전셋값은 평균 10.5% 올랐다. 반면 임대차 3법 시행 이후인 2020년 8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의 전국 전셋값 상승률은 27.3%에 달했다.

불어나는 전세 자금 대출을 ‘서민 주거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내버려 둔 점이 전세 사기 위험을 키웠다. 전셋값이 오르자 보유 자금이 많지 않은 서민·청년층은 자연스럽게 전세 대출로 몰려들었다. 2017년 말 48조6000억원 규모였던 전세 자금 대출 잔액은 지난해 7월 170조2000억원까지 늘었다. 특히 20대의 대출 규모는 3조6000억원에서 28조1000억원으로 8배 가까이 커졌다. 정부가 보증금 사기 피해를 방지하겠다며 추진한 보증보험 확대 조치는 오히려 대출을 낀 전세 계약을 부추기고 ‘전세 거품’을 심화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깡통 전세와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심화했다.

각종 다주택자 규제와 임대사업자 정책 세제 혜택 폐지는 임대 시장에서 투기꾼들이 차지하는 지분을 되레 늘렸다.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각종 규제에 부담을 느낀 다주택자와 정상적인 임대사업자들이 시장을 이탈했고, 대신 극단적 레버리지 등의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수천 가구를 매입하는 ‘부실 사업자’들이 임대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대출을 받은 이들은 악성 임대사업자가 다수인 임대 시장 앞에서 무력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임대사업자가 안정적인 자산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전세 사기와 깡통 전세 문제를 초래하는 최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정부도 대책 마련 실패
정부와 여당은 이 같은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전세 사기 확산 원인이 지난 정부에 있다며 책임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번 정부도 마찬가지다. 윤석열정부는 지난 2월 임차인이 임대인의 세금 체납 내역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보증보험 가입 시의 전세가율 기준을 90%로 하향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전세 사기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이는 지엽적인 해결에 그쳤을 뿐 근본적인 방지 대책은 아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막상 지원이 시급했던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상대로는 ‘늑장 대처’를 반복했다.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자가 처음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지난 2월이었다. 피해자들은 그때부터 거듭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했지만 정부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그나마 마련돼 있던 긴급주거지원과 저금리 대출 대책은 실제 피해자들이 이용하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아 이용률이 저조했다. 정부는 피해자가 둘이나 더 발생한 뒤에야 태도를 바꿔 경공매 유예 등의 본격적인 피해 구제에 나섰다. 이조차도 공공매입과 관련해 피해자들과 의견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당정은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전세 사기 특별법과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특별법 내용은 미추홀구 등의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에 집중돼 근본적인 전세 사기 방지책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본 대책은 전세 대출 축소
전문가들은 전세 사기 피해 방지를 위해 전세 자금 대출의 보증 비율을 낮추고 대출을 억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문도 연세대 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빌라의 경매 낙찰가율이 70% 수준인데 매매가격의 90, 100% 수준까지 보증을 해주니 사고가 터질 수밖에 없다”며 “근본적으로는 전세 대출을 없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임차인이 제대로 된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양측의 정보 격차를 줄이는 것도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