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올해도 식탁 물가 위협한다

입력 2023-04-26 06:05
지난 2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설탕 매대 옆을 방문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식품 원재료 가격 변동이 심상찮다. 백설탕과 설탕의 원료인 원당의 선물 가격이 이달 들어 급등하는 추세다. 최근 10년 동안 이렇게 가격이 폭등한 적이 없었다. 밀 선물 가격은 최고점에서 내려왔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도 계속되고 있다. 국내 식품업계는 당장 영향이 없다면서도 장기화했을 때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26일 영국 런던 국제금융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5일(현지시간) 기준 백설탕 선물 가격이 t당 684.6달러로 마감했다. 지난달 22일 600달러 선을 넘어선 이후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지난 12일에는 t당 700달러를 돌파했다. 런던 국제금융선물거래소의 설탕 선물 가격이 t당 70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11년 11월 이후 12년 만이다.

설탕의 원료인 원당 선물 가격도 비슷한 추세다. 미국 뉴욕 국제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3일(현지시간) 기준 파운드당 25.84센트에 거래됐다. 이달 들어 하루가 멀다고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원당과 설탕 선물 가격이 연일 치솟고 있지만 당장 식품기업에 가격 부담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선물 거래인 만큼 통상 4~6개월 뒤 가격에 반영된다. 설탕의 경우 1년까지 기간이 늘어나기도 한다. 구매 가격이 소비자가격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시차가 생긴다. 현시점의 선물 가격 급등이 당장 식품기업과 소비자가격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17일 서울의 한 마트에 빵이 진열돼 있는 모습. 뉴시스

다만 이런 추세가 장기화하면 국내 식품기업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원당이나 설탕 구매 시점에 선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면 비용 부담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원당을 수입하는 제당업계와 원재료비에 설탕 비중이 10%가량 차지하는 제과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설탕 가격의 비정상적인 급등은 이상기후와 전쟁, 엔데믹으로 설명된다. 기본적으로 이상 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과 제조 여건 악화가 설탕 가격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오른 것도 악화 요소다. 설탕 원재료인 사탕수수를 설탕 대신 에탄올 생산으로 전환하면서 설탕 생산량 자체가 줄었다.

공급 자체가 급감했는데 수요는 급증 추세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이어오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외식 수요가 증가했다. 설탕을 소비하는 이들은 늘었는데 공급 자체는 제한돼 있다.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원당·설탕 가격 급등은 수요 공급의 불균형이 크게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밀가루 상품이 진열돼 있다. 뉴시스

설탕만 문제가 아니다. 다소 안정세를 찾은 듯 보이지만 밀 가격은 여전히 불안한 형국이다. 결정적인 요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쟁’이다.

전쟁의 영향이 한국인의 식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난해부터 실감하고 있다. 국제선물시장에서 밀과 해바라기유 등의 가격 급등이 제과·제빵·외식산업에서 비용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소비자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최근 국제 밀 선물 가격은 1년 전보다 안정적인 추세다. 시카고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4일(현지시간) 기준 t당 밀 선물 가격이 236.63달러로 마감됐다. 최고점이던 지난해 5월 약 419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던 데 비하면 77%가량 빠졌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2021년 5월보다 여전히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밀밭 풍경. 픽사베이 제공

세계 최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수확량 부진 전망도 악재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를 지나면서 수확량 영향권에 들며 밀 가격이 다시 불안한 상황에 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 경제매체 CNBC 보도에 따르면 올해 우크라이나의 밀 생산량은 1600만~1700만t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침공 이전인 2021년(3300만t)의 절반 수준이다. 연료 부족과 인건비 증가가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 곡물이나 설탕의 국제 선물 가격에 기업이 휘청이거나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현재로서는 어떤 것도 결정되지 않는 상황”이라면서도 “불확실한 상황인 건 맞다. 구매처를 다변화하고 구매 시점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애를 쓰고 있지만 고환율이 이어지고 있어서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