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다니던 길 위론 전차 길이…광화문 월대, 일제강점기 땅에 묻힌 지 100년 만에 모습 드러내

입력 2023-04-25 15:47
25일 모습을 드러낸 광화문 월대. 왕이 다니던 길인 어도와 서편 길을 훼철하며 들어선 전차 선로의 침목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1866년 고종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을 중건하며 광화문 앞에 월대(越臺, 月臺)를 완성했다. 가운데 너비 7m 어도(왕이 다니는 길), 양 옆에 신하들이 걷는 길 등 3면 형식이다. 전체 너비 29.7m, 길이 48.7m에 달하는 긴 무대 형태로 육조거리까지 이어지며 왕실의 위엄을 드러내던 이 월대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땅 속으로 사라졌다.

1920년대 훼철돼 역사 속에 묻혔던 월대가 복원 공사 중인 25일 10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은 25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지난해 9월부터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월대 복원·정비를 위해 진행 중인 발굴 조사 성과를 발표하는 한편, 발굴 현장을 언론에 공개했다.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월대는 고종이 걸었던 어도와 서편 길 위로 전차 선로가 놓이며 깔았던 침목의 형태가 선명했다.

월대는 궁궐의 정전 등 중요 건물에 설치된 넒은 대로 월견대(月見臺)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경복궁 근정전 등 정전 앞에도 있지만, 창덕궁 돈화문과 덕수궁 대한문 등 궁궐 정문에서도 확인된다. 이 가운데 왕의 위엄과 장식을 위해 난간석을 두른 경우는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광화문 월대의 초기 모습을 추정한 모식도.

세종실록 1431년에 월대 축조가 건의 되는 등 월대의 개념적 기원은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립대 신희원 교수는 “당시 월대는 조성되지 않았지만 광화문 밖은 무과시험을 보고 명나라 사신이 왔을 때 영접하는 등 주요 행사의 무대로 쓰였다”고 말했다. 현재의 월대는 고종 때 쓰여진 경복궁 영건일기를 통해 확인이 된다. 신하들은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했던 이 월대에서도 왕실 의식과 관련된 행사들이 열렸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광화문 월대는 동서 외곽에 긴 장대석으로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내부는 흙을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들었다. 남쪽에는 3단의 계단을 조성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들어 계단은 경사면으로 차례로 바뀌었고, 1920년대 전차가 생기면서 선로를 놓고 그것이 또 복선화되면서 난간석 등이 철거됐다. 급기야 광화문이 이전되며 월대가 있던 자리는 도로로 쓰이게 됐다.
1917년의 광화문 월대 모습(국립중앙박물관 유리 건판 사진). 월대 남쪽에 조성된 계단이 이미 경사로로 바뀌어 있다.

발굴 결과, 어도와 서편은 전차 노선으로 쓰이며 크게 훼손됐지만 동편은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어도에 있던 계단의 소맷돌을 받쳤던 지대석도 확인돼 원형 복원에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문화재연구소 양숙자 연구관은 “1920년대에 훼철된 이후 동구릉 등에 이전돼 있던 난간석 등 월대 부재를 재사용하고 전통 재료 기법을 사용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월대는 오는 10월 광화문 월대 복원 기념행사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