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600곳 응대 콜센터직원 뇌출혈…대법 “산재”

입력 2023-04-25 14:54

전국 600개 무인주차장 이용자들을 상대로 업무를 하다 뇌출혈 진단을 받은 콜센터 직원에 대해 산업 재해를 인정하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18년 2월 콜센터 운영 대행사와 파견계약을 맺고 약 7개월간 상담원으로 근무했다. 그는 오후 2~11시에 일하는 ‘석간조’에 배치됐고 약 600개 가맹업체의 무인 주차장 이용객을 상대로 요금 정산 방법 등을 안내했다.

A씨는 2018년 9월 오후 식사 중 반신 마비와 실어증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이어 병원에서 ‘뇌 기저핵 출혈’ 진단을 받았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했다. 하지만 공단은 ‘A씨의 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불승인 결정을 내렸고, A씨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은 A씨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은 1심 판단을 뒤집고 “A씨의 병은 개인적 요인이 자연적 경과에 따라 악화해 발생했다”며 공단 처분이 적법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A씨의 근무 강도 및 이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히 강했을 것”이라며 2심 판결을 파기했다. 비록 A씨의 기저질환인 고혈압을 주된 발병 원인으로 보더라도 업무상 스트레스가 고혈압과 겹쳐 뇌출혈이 악화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A씨가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를 장기간 담당했고, 이에 따른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발병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추단된다”고 밝혔다.

A씨가 속한 석간조가 통상적인 퇴근 시간과 겹쳐 이용객이 많은 데다가 야간근로까지 일부 겹치는 만큼 업무 강도가 주간·야간조보다 높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이 보장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 별도의 휴게시설이 없는 등 근무환경이 열악한 점도 판결 이유로 꼽았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