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발생한 강원도 고성 산불로 피해를 입은 고성·속초지역 이재민들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춘천지법 속초지원 민사부(재판장 김현곤)는 20일 고성 산불 이재민 등 산불 피해 주민 60명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한전 측이 이재민에게 87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이 지정한 전문감정평가사 감정 결과의 6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재민들은 한전 측에 263억원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피고가 고의 중과실로 화재를 발생시킨 게 아니고 당시 강풍 등 자연적인 요인 때문에 피해가 확산한 점도 있어서 피고의 책임을 60%로 제한했다”며 “산불 사건 관련해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드리지 못하게 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재민들은 2020년 1월 한국손해사정사회가 산출한 한전 측의 최종 피해 보상금(피해액의 60%)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소송을 시작했다. 법원은 지난해 11월 화해 권고 결정을 내리기도 했으나 양측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성 산불은 2019년 4월 4일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전신주 개폐기 내 전선에서 불꽃이 튀면서 발생했다. 이 불로 고성과 속초지역 축구장 면적(0.714㏊) 1700배가 넘는 산림 1260㏊ 소실됐으며 899억원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났다.
당시 전신주 관리를 소홀히 한 혐의로 전 현직 한전 직원 7명이 재판에 넘겨졌으나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하자로 인해 전선이 끊어져 산불이 발생한 점은 인정되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재민들은 재판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산불 피해 주민들은 “실증적인 입증자료가 부족해서 이미 40% 이상이 감면됐는데 거기다가 강풍을 이유로 감면을 하면 우리는 복구를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김경혁 4·4 산불 비상대책위원장은 “한전 직원들에 대한 형사 재판에 이어 또다시 재판부가 이재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판결을 내렸다”며 “항소는 물론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재판 결과는 최근 발생한 강릉 산불 등 전선이 끊어지면서 발생한 다른 산불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성 산불 원인은 전신주의 데드엔드클램프(전선을 전신주에 고정하는 금속 장치)에 스프링와셔가 빠져 있었던 하자로 인해 강한 바람에 전선이 끊어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1일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 원인도 ‘강풍에 쓰러진 나무에 의한 전선 단선’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산불 책임 소재를 놓고 법적 다툼이 이어지면 이번 재판 결과가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속초=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