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공개 예정인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이집트 당국은 여왕을 흑인으로 묘사한 것은 역사 왜곡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넷플릭스 측은 클레오파트라의 혈통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최근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레오파트라 7세 여왕을 흑인으로 묘사한 데 대해 이집트 검찰에 고발장이 제출됐다.
마흐무드 알-세메리 변호사는 해당 다큐멘터리에 이집트의 미디어 규제법을 위반하는 시각 자료와 콘텐츠가 포함돼 있다며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하고 이집트에서 넷플릭스 서비스 접근을 차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군주로, 기원전 51년부터 기원전 30년까지 이집트를 통치했다. 여왕은 그리스 장군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후손으로, 이후 이집트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왕가가 근친혼을 통해 명맥을 이어갔기에 흑인 핏줄이 섞여들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클레오파트라 7세를 흑인 배우인 아델 제임스가 연기했다. 역시 흑인 배우인 윌 스미스·제이다 핀켓 스미스 부부가 설립한 영화제작사 ‘웨스트브룩 스튜디오’가 제작했다.
지난주 예고편이 공개되자 많은 이집트인이 클레오파트라를 흑인 배우가 맡은 데 대해 비난하고 나섰다. 실제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조차 주연 캐릭터가 흑인에 의해 연기되는 ‘블랙 워싱’의 영향을 받는 것은 지나치다는 얘기다.
이집트 고대유물부 장관을 지낸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는 현지 매체에 “이것은 완전히 가짜”라며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인이었고, 즉 흑인이 아니라 피부색이 밝았을 것이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들어 미국과 남미의 흑인들이 ‘이집트 문명은 흑인에서 기원했다’는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이집트에서 흑인으로 알려진 통치자는 기원전 747~656년의 제25왕조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넷플릭스는 이집트 문명의 기원이 흑인이라는 거짓이자 기만적인 내용을 퍼뜨려 혼란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며 이집트인들이 거대 업체인 넷플릭스에 맞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넷플릭스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제작자는 “클레오파트라의 혈통에 대한 논란이 많다”고 말했고 클레오파트라를 연기한 아델 제임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악플이 담긴 스크린샷을 게시하며 “캐스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보지 말라”고 적었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뉴스 사이트 투둠(Tudum)은 지난 2월 아델 제임스 캐스팅에 대해 “클레오파트라의 인종에 대한 수세기간의 논쟁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 다큐의 제작 책임자와 내레이터를 맡은 미국 배우 제이다 핀켓 스미스는 “흑인 여왕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매우 많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나와 내 딸, 내가 속한 공동체에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국제 청원사이트인 ‘체인지’에는 해당 논란을 두고 “이집트의 소중한 역사가 아프리카 중심주의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며 다큐멘터리를 비판하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해당 청원은 8만5000명의 동의를 받았지만 이후 알 수 없는 이유로 삭제됐다.
네티즌들은 “흑인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인어공주’는 동화책이었지만, 이번 다큐멘터리는 역사책” “아무리 넷플릭스라도 역사는 절대 바꿀 수 없다”는 등 날 선 반응을 보였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