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주리주 캔자스 시티에서 집을 잘못 찾은 16살 흑인 소년이 80대 백인 집주인의 총을 맞아 크게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18일(현지시간) AP통신·CNN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현지시간) 캔자스시티 노스랜드의 한 주택 밖에서 총에 맞은 흑인 소년 랄프 얄(16)이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랄프는 당시 부모님 심부름으로 주소가 ‘115번 테라스’인 집에 간 남동생을 데려오기 위해 이 지역을 찾았다가 주소를 잘못 보고 ‘115번 스트리트’에 있는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시간은 오후 10시쯤이었다.
초인종 소리에 집에서 나온 집주인 앤드류 레스터(84)는 다짜고짜 총을 들이댔다. 그는 랄프의 이마와 오른쪽 팔뚝을 향해 총을 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에 붙잡힌 앤드류 레스터는 흑인 남성이 현관문 바깥의 바람막이 문을 열고 집에 침입한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1급 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 랄프는 다행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이며 현재는 안정적인 상태로 전해졌다.
미주리주에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총기 사용을 정당화하는 ‘스탠드유어그라운드법’이 제정돼 있지만, 미 검찰은 이번 총격이 정당방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한 재커리 톰슨 검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인종적 요소”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기소 문건에는 “인종적 동기”가 있었다고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캔자스 시티와 전국 각지에서 분노하는 목소리가 전해졌다.
주말에 열린 집회에선 “랄프를 위한 정의”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초인종을 누르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등의 팻말과 구호가 나왔다. 랄프의 변호인은 “비무장 흑인에 대한 총기 폭력은 반드시 멈춰져야 한다”며 “우리 아이들이 사냥당하고 있다고 느낄 게 아니라 안전하다고 느껴야만 한다”고 말했다.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도 이날 트위터에 “초인종을 잘못 눌렀다는 이유로 총에 맞을까 봐 두려워하는 어린이는 없어야 한다”고 썼다. 미주리주 상원은 랄프를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AP 통신에 따르면 사건 직후 랄프의 가족은 온라인 모금사이트 ‘고펀드미’에 의료비 마련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 17일 오후 기준 140만달러(약 18억 4570만원)가 넘는 돈이 모였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