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같은 잇단 죽음… 전세사기 주택 경매, 무기 연기

입력 2023-04-18 07:50 수정 2023-04-18 09:51
17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씨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그는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다. 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경매로 인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가 잇따르자 한국자산관리공사(이하 캠코) 등이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매각 기일 변경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캠코 인천지역본부에 따르면 본부가 관리 중인 인천 미추홀구 소재 주택 210건 가운데 3월 37건, 4월 14건 등 총 51건에 대해 매각 기일 변경 신청을 했다. 캠코 관계자는 “캠코 관리 주택의 경매 피해자에 대해서는 정부 대책이 나올 때까지 경매 매각 기일을 계속해서 연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캠코는 금융기관과 약정을 통해 부실채권(MPL)을 매입하는데, 이 가운데 이번 전세사기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미추홀구 지역에서 근저당권을 설정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포함됐다.

캠코는 지난 3월 초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 이후 피해자 지원대책의 일환으로 정부에서 이 같은 처분을 요청해 와 절차를 밟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7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A씨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공동현관문에 전세사기 피해 대책을 호소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 3명의 극단적 선택을 부른 일명 ‘건축왕’의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경우, 대부분 건물을 신축하면서 금융기관이 대출을 해주고 선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이 금액이 커 해당 주택이 저가에 낙찰될 경우 후순위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최우선변제액만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채권자 권리를 확보하게 된 캠코가 경매 기일을 연기해 세입자가 정부 지원책에 따라 대출을 받거나 임시 거주할 곳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난 14일 숨진 피해자 20대 남성 A씨가 살던 아파트도 자산관리공사가 지난달 24일자로 매각 기일 변경 요청을 해 일단 입찰이 중단된 상태였다.

정부는 현재 다른 전세사기 피해자 주택의 권리관계에서 국세나 지방세 등 세금이 선순위인 경우에도 경매 기일을 연기하는 조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문제가 확산되자 추가 지원 대책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에 대응하는 전국 단위 대책위원회가 18일 출범했다. 안상미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전세사기가 더 이상 일반 사인 간 피해라고 보기 어려운 사회적 재난이 됐다”며 “전국의 피해자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