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딸 영정 들고 간 졸업식…“사과 한번 없었다”

입력 2023-04-13 05:05 수정 2023-04-13 10:36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딸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어머니 이모씨는 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졸업식에 참석했다. 페이스북 캡처

권경애 변호사의 재판 불출석으로 학교폭력 소송에서 패소한 고(故) 박모양 어머니가 과거 딸의 영정 사진을 들고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다가 홀대받은 사연을 공개했다. 어머니 이모씨는 초대받지 못한 졸업식에 가서 교사들로부터 ‘원하는 게 뭐냐’ ‘저건 또 뭐야’ 등의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12일 ‘영혼이 참석했던 A여고 졸업식’이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딸 박양은 지난 2015년 A여고 재학 중 집단따돌림을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씨의 글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2018년 2월 A여고 졸업식에 검은색 상복을 입은 채 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참석했다. 딸의 학교폭력 사안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학교 차원의 잘못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딸과 남은 가족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찾은 자리였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딸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어머니 이모씨는 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졸업식에 참석했다. 페이스북 캡처

하지만 학교 측의 반응은 차가웠다. 졸업식장에 가기 전 ‘인성부장’이라는 교사가 나타나 “어머니가 원하시는 게 뭐냐”고 물었지만, 학교 측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이씨의 말에 계속 웃었다고 한다. 결국 졸업식장에 참석한 이씨는 “한 명의 여교사는 딸의 영정사진을 쳐다보며 ‘저건 또 뭐야’라고 말을 했다”고 기억하며 “교육자인 사람이 사람의 사진을 보며 저거라니…. 사물이 된 순간이었다”고 남겼다. 이씨는 “상복 차림으로 영정사진을 든 내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뜨악함 그 자체였고 혹은 수군거리기도 했다. 아무런 관심도 없이 자기 일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고 떠올렸다.

이씨에 따르면 학교 측은 처음에는 발언 기회를 줄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발언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고 어느새 폐회식 선언 멘트가 나오고 있었다. 이씨는 직접 마이크를 가로채 발언 기회를 얻었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딸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어머니 이모씨는 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졸업식에 참석했다. 페이스북 캡처

이씨는 “딸은 학교폭력 A여고 왕따 사건으로 시달리다 하늘나라로 간 아이이고, A여고는 딸이 그렇게 당한 것에 대해서 가해자, 피해자 없음으로 처리했다”며 “학교는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으며 딸의 장례식조차도 학교는 숨긴 채 나중에서야 1학년 9반 아이들을 모아놓고 ‘중학교 때 학교폭력으로 힘들어하다 자살한 거다’라고 일축해 버렸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오늘 졸업식에 초대받아서 온 것이 아니다. 굳건하게 마음먹고 여러분들이 혹여 상처받을지도 몰라서 걱정도 했지만 도저히 어미로서 이 순간, 이 자리를 안 올 수 없어서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록 외면당하고 존재조차도 무시당한 채 세상을 떠난 아이지만 어미로서 내 아이의 졸업식을 해주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여러분들의 졸업을 망치려고 온 게 아니다. 단상에 앉아 403명의 졸업장 수여를 한 명, 한 명 바라보았다. 내 자식도 소중하지만 여러분도 소중한 우리 모두의 딸들”이라며 “딸처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외면하지 말고 손잡아 주고, 어른들의 비겁함을 배우지 말고, 젊은 여러분이 희망이니 사람답게 함께 사는 세상, 스스로에게 주인이 되어 만들어 주시길 부탁한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졸업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딸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어머니 이모씨는 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졸업식에 참석했다. 페이스북 캡처

졸업식이 끝나고 이씨는 교장에게 “당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죄를 받기 위해서 왔으나 교사들은 삐딱했고, ‘저건 뭐야’라고 했으며, 이사장은 정중한 인사 한마디도 없었고, 일절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시하고 나갔다. 오늘이 끝이 아님을 알라”는 경고의 말을 남겼다.

이씨는 “사죄도 용기가 필요한 것인데 오늘도 A여고는 용기가 없는 비겁함을 보였다. 단상 위에서 발언하는 나를 꼼짝 않고 시선 마주치고 공감하면서 들어주던 아이의 모습들이 그나마 가슴에 남는 하루였다. 이래서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낫다”는 말로 페이스북 글을 마무리했다.

어머니 이씨와 딸 박양의 사연은 최근 법률대리인이었던 권경애 변호사가 3차례 열린 항소심 재판에 모두 불출석해 최종 패소 판결을 받으면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권 변호사에 대한 징계 개시 절차를 시작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