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나의 신앙]원우현(23)​성령이 인도해 주시는대로 몽골 주민 전도….

입력 2023-04-13 02:25 수정 2023-04-14 23:08
2016년 4월 선교 훈련을 받은 뒤 75세 나이에 주님께 모든 걸 맡기고 우리 부부는 낯선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몽골국제대학(MIU) 교수로서 캠퍼스 운동(Campus Crusade) 선교를 잘 해보자고 다짐했다.

그보다 더 강렬하게 몽골 사회의 소외되고 가난한 지역을 구석구석 찾아 위로하며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앞줄 왼쪽 할리웅 목사, 오유나 양호실 의사와 중보 기도하는 필자(가운데)

15년간 병상에 누워 있는 투루볼트 군을 찾아 심방예배를 드리는 필자.

지금까지 온누리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75세에 대학 교육과 연구를 위해 장기 전임 선교사역을 떠난 사례는 처음이라고들 했다.

P 부목사님이 몽골로 떠나기 전 정기예배 시간에 교인에게 파송 인사를 하길 권했다.

인사 시간을 주려고 내게 연락을 한 것이다.

그러나 교인들 앞에서 선교지로 떠나는 인사는 생략하고 조용히 선교지로 향했다.

온누리교회 선교 담당 K목사가 선교위원회 위원들에게 선교 이상을 밝히라는 권유대로 선교계획을 발표했다.

사실 몽골에 가서 누구를 만나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등 유용한 정보를 듣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인적 관계에 의존하지 않았다.

대신 성령이 인도해 주시는 대로 몽골 주민을 전도하고 몽골인 교회를 개척하길 기도했다.

도착 후 물론 온누리교회 담당자의 무관심은 이미 잊어버리고 성령을 따라 한발 늦게 따라가는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몽골 도착 후 온누리교회 (지도자 훈련반) 동기인 요즘 대통령상 수상자로 유명한 박관태 의료 선교사가 식사대접을 하며 환영해 주었다.

당시 그는 온누리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 파송으로 의료 선교를 하는 중이었다.

박 원장은 고령의 원로 장로님이 오셨으니(울란바토르를 포함 몽골에 상주하는 온누리교회 파송 전임 선교사들 10여 명을 소집)하겠다고 했다.

대학 사제지간이지만 선교사로는 스승이자 본보기(Role Model)였다.

몽골 전역에 온누리교회 10여 명의 파송 선교사와 두란노 울란바토르 지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K 부목사는 선교 담당자로서, 고령의 선교사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해 선교의 띠를 연결하도록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몽골인만의 게르 개척교회를 만나면서 주님께서 왜 온누리 네트워크 없이 게르 교회를 홀로 감당하게 하신 깊은 뜻을 깨닫기 시작했다.

몽골 사회 시작한 후 귀국할 때까지 몽골의 대형 한인교회나 중·고등학교 동창들과 전혀 교류 없이 지내고 왔다.

파송된 MIU 학원 안에서만 단순한 학원 스케줄을 반복했다.

​개인적인 관계 없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몽골인을 만나 선교하는 과정도 신기했다.

추운 겨울 국립 암병원 심방을 다녀오다 온 거리가 얼름 바닥이 된 거리에서 발을 다쳤다.

몽골 국립의대 교수인 박관태 교수는 내 발을 진찰한 뒤, “한국가서 수술하시는게 정답입니다. 여기서 제가 하면 5분이면 끝낼 수는 있습니다만. 원 선교사님이 결정하셔야지요.”

간단한 수술을 받고 추운 겨울에 택시를 잡기까지 고생한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MIU 양호실에 매일 후속 치료를 받아야했다.

마침 몽골 국립 의대 의사를 하다 MIU 양호실로 온 오유나 여의사가 발치료를 했다.

몽골어를 수강하던 나는 영어와 몽골어로 성경을 소개했다.

그런데 의외로 몽골 성경책을 꺼내더니 이걸 부총장이 얘기하는 거냐고 반문하는 것이 아닌가.

5인이 모이는 가족 모임에 아들 때문에 나간 지가 3주 됐는데 같이 나가자고 권유를 하는게 아닌가.

차남 빠뻬리두를 중국 베이징 대학 병원에서도 치료했으나 효험이 없었다.

아멘축복교회 이름으로 모이는 할리웅 여목사의 치유의 은사로 밥을 먹기 시작해 오유나 의사도 따라서 교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믿음이 싹트지도 않은 오유나의 인도로 5인 예배를 참석하니 너무 기쁘고 평안했다.

참석 교인 전부가 할리웅 목사의 치유의 은사를 고대하면서 아멘하고 축복을 간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심장병 수술이 잘못된 생후 5개월된 아누우징 양의 가족, 15년간 침대에 누워 있던 투루볼트 군의 모친 델구르 성도, 30세 아들이 교통사고난 바체여사와 불면증에 시달리는 35세 런던 유학생 시드양 등이 고통 중에 있었다.

머리 숙인 가정마다 헐리웅 여목사의 치유의 능력과 주님의 기적을 절실히 원했다.

나는 병과 고통에 묶여 무턱대고 아멘축복교회를 찾아온 신도까지도 사랑하심을 믿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이 떠올랐다.

주님은 몽골의 온갖 잡신에 포로된 영혼까지도 사랑하신다고 느꼈다.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주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하시고 아름다운 덕을 누리게 하신다’고 믿으니 마음에 희망이 솟구쳤다.

병을 나으려는 아멘축복교회 성도를 위로하기 위해 ‘SoonChurl Gift of Love fund’(순철이 선물한 사랑 기금)를 모금하기 시작했다.

특히 박우형 장로의 헌금은 일생을 말없이 지내온 순철의 SoonChurl Gift of Love Campaign이 밑거름이 됐다.

아직도 계시록교회와 아멘축복교회의 가난한 백성들은 작은 사랑의 선물을 받고 주님께 영광을 드린다.

선교 활동과 관련해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우연하게 발 치료 때문에 몽골 의사를 만나, 몽골 여목사님과 몽골 신도의 육신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몽골인 게르 개척교회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심이라.”(벧전 2:9)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