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감청에 안전지대 없다… 음파·진동·통신케이블 등 첨단기술 활용

입력 2023-04-10 16:55

미국의 도감청 논란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도감청 대상도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 같은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 특히 안보와 직결된 부분에 있어서는 동맹국에 대한 도감청도 불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국을 대상으로 한 도감청도 이번 국가안보실 도감청 의혹 외에 2013년 폭로된 주미 한국대사관 도청, 1976년 미 중앙정보국(CIA)의 청와대 도청 등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수차례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1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의 도감청 노하우는 냉전 시대부터 엄청나게 쌓였다”며 “미 정보기관 예산의 절반은 도감청에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의 도감청은 주로 국가안보국(NSA)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방법도 다양한데, 이번 안보실 도감청 의혹과 관련해선 안보실 인사들의 전화 통화를 도감청한 것이 아니라 한자리에 모여 회의한 내용이 새나갔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예컨대 회의실 유리창을 통해 도감청하는 방법이 있다. 회의 참석자들의 목소리 음파가 유리창에 반사될 때 유리창이 미세하게 떨리는데, 유리창 밖에 보안 장비가 설치돼 있지 않으면 ‘고성능 지향성 전파 탐지’를 통해 이 미세한 떨림을 식별할 수 있다. 이 방식은 근거리에서 가능하다.

원거리 도감청도 불가능하지 않다. 한 전직 외교부 관료는 “도감청될까 봐 밖에서 산책하면서 얘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제는 이것도 마이크로웨이브(극초단파)를 통해 도감청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야외에서 대화할 때도 특정인을 향해 마이크로웨이브를 쏘면 멀리서도 도감청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전직 관료는 “안보상 중요한 얘기를 할 때는 도청당한다 생각하고 상황을 봐 가면서 얘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통신 케이블을 활용하는 것이다. 2021년 미국이 유럽 정관계 고위 인사들을 도감청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덴마크를 지나가는 해저 통신 케이블이 도감청 수단으로 지목됐다. 당시 미국은 덴마크와 정보 협력 관계를 맺고 이 케이블에 접근했었다.

IT 업체의 협조를 받아 인터넷 검색 기록이나 메신저 대화 내용 등을 받는 방식도 있다. 2017년 CIA가 삼성전자·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등의 제품과 플랫폼을 도감청 도구로 활용했다는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민감한 외교안보 현안을 다루는 고위 관료들은 도감청을 막기 위해 보안 장비가 장착된 별도의 전화기를 사용한다. 또 대사관 등 주요 시설에는 외부와 연결이 불가능한 ‘시큐리티 룸’(보안실)이 마련돼 있어 중요한 얘기는 이곳에서 한다고 한다.

도감청 방지와 관련해 김 전 의원은 “방화벽을 쌓거나 방어센서를 설치하는 등 여러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보안 시스템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면서 “회의실을 설계할 때 보안 장치가 돼 있는 별도의 장소를 마련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영선 박준상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