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이던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 거친 목소리의 한 남성이 내뱉는 욕설과 저주의 메시지가 건물 숲 사이로 울려 퍼졌습니다. 눈부시게 화창했던 날 가족 단위로 시내에 나온 시민들은 이 소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육중한 크레인에 매달린 6개의 대형 스피커를 통해 몸이 떨릴 듯한 굉음과 여과없는 날선 메시지가 수많은 시민들의 귀에 박혔습니다.
발원지는 한국교회연합(한교연)과 ‘광화문의애국시민’이라는 단체가 함께 드린 부활절연합예배였습니다. 예배 형식을 취했지만 정치적 메시지가 더 많았습니다. 저주에 가까운 발언의 타깃은 같은 교계 연합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었습니다. 한교총은 이날 선교 138년 만에 처음으로 광화문 일대에서 ‘부활절 퍼레이드’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무차별적 폭언은 한교총의 퍼레이드 행렬이 자신들의 모임 장소와 가까워지면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들은 갑자기 찬송가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를 합창했습니다. 진행자는 퍼레이드 행렬을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며 고래고래 소리쳤습니다.
퍼레이드 행렬 속에는 어린 자녀와 참석한 가족도 여럿 있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터져 나오는 육두문자에 노출된 아이들의 눈빛은 흔들렸고 부모들은 당황했습니다. 환경정책기본법 제12조(환경기준의 설정)에 따르면 도로변 최대 기준 소음은 75㏈이지만 이날 경찰 측정 결과 한교연 등이 쏟아낸 소음은 최대 104㏈을 넘었습니다. 그야말로 귀를 찢을 듯한 소음이 부활절을 장식한 셈입니다.
그 자리에 서서 분열했을지언정 ‘연합과 일치’를 소중하게 여겼던 한국교회가 걸어온 길을 돌아 봤습니다. 2000년 여름, 서울 서대문구 상남경영관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원 교단 대표 30여명이 모였었죠.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간담회’ 자리였습니다. 참석자들의 얼굴에는 연합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습니다. 한 교단 사무총장이 “하나님이 이 자리를 얼마나 기뻐하시겠냐”며 환영 인사를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날 간담회는 2002년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교단장협의회’ 출범으로 이어졌습니다. NCCK는 “연합과 일치를 위해서라면 우리 단체 이름도 내려놓겠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죠. 결실을 볼 수 없었던 아쉬움도 있지만 연합과 일치는 한국교회의 궁극적인 지향점입니다. 최근 교회연합기구 통합 논의도 원칙적으로는 이런 정서에 뿌리 내린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연합단체들이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서 주도한 올해 부활절연합예배는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팬데믹으로 모이지 못했던 지난 3년의 답답함에서 벗어난 첫 야외 부활절 행사였건만 욕설과 막말, 비난으로 얼룩지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부활의 기쁨과 희망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현장을 목격한 이들이라면 이런 소회가 비단 기자만의 감정이 아니라는 데 고개를 끄덕일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기리기 위해 모인 자리,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셨을까요. 한발 더 나아가 이제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의 청사진은 또 어떻게 그려가야 할까요. 우문현답을 기대해봅니다. 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