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할 땐 은행에 대출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금융기관에서 먼저 연락와서 대출을 골라 받는 상황입니다.” 경남 창원에서 원전 주기기 파이프와 노즐 등을 생산하는 박봉규(63) 원비두기술 대표는 지난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내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연간 100억원을 웃돌았던 매출이 ‘탈원전 정책’으로 반토막 났을 때에는 회사를 정리하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탈원전 정책 폐기로 숨통이 트였다고 한다. 박 대표는 “지난해 11월 선발주 30억원을 받아 계약서를 가지고 은행에 가서 신규 대출을 받고 기존 대출도 연장했다”며 “2017년 새 공장 지으려고 사뒀던 공장 부지를 팔았었는데 최근 창원 북면에 들어서는 국가산업단지에 6600여㎡ 규모의 부지도 신청했다”고 전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고사 위기에 놓였던 원전 생태계가 부활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원자력 산업 분야에서 원비두기술 같은 중소기업이 89.2%나 된다. 매출 100억원 미만 업체가 453곳 중 274곳(60.5%)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영세업체가 많다.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이들 업체는 모두 사라질 뻔했다. 국내 원자력 공급 산업체의 매출액은 2016년 5조5034억원에서 2021년 3조9269억원으로 28.7% 줄었다. 같은 기간 종사자 수는 2만2355명에서 1만8725명으로 16.3% 감소했다.
원전 생태계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중소기업들은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원비두기술만 해도 2020년 103억원에 달했던 매출이 지난해 50억원 규모로 급감했다. 한때 70명에 달했던 직원은 20여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박 대표는 기존 원전 유지보수 작업과 해외 수주로 겨우 버텼다. 그는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매출을 여기저기 얻으며 지냈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원전 재가동,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면서 분위기가 급격하게 반전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수력원자력, 두산에너빌리티가 지난달 29일 경북 울진군에 건설되는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계약을 공식 체결하면서 두산에너빌리티의 협력사 460여곳은 환호성을 질렀다.
30년 업력의 김동명(59) 범성정밀 대표의 목소리에도 희망이 묻어났다. 김 대표는 “25억~26억원 하던 매출이 1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18억원까지 회복했다. 올해는 탈원전 이전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신한울 3‧4호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각각 2032년, 2033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어 원전 협력사들은 10년치 일감을 확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액으로 2조9000억원에 달한다.
두산에너빌리티 측에서 지난 2월까지 450억원 규모의 일감을 미리 발주했고, 연말까지 2100억원 규모를 추가 발주할 계획이다. 협력사들에 골고루 일감이 돌아가는 수준이라고 한다. 김 대표는 “최근 두산에너빌리티로부터 신한울 3‧4호기 관련 6억원의 선발주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직원이 15명에서 8명으로 줄었다가 최근 11명으로 다시 늘었고 2, 3명 정도 추가 채용할 계획”이라며 “기계설비 쪽에도 1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연말부터 미국 뉴스케일파워에서 개발한 소형모듈원자로(SMR) 부품 제작을 본격화하는데 사전에 대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