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동생 떠올리면 눈물 펑펑…‘이산가족’ 한 못 푼 현미

입력 2023-04-04 18:05
4일 세상을 떠난 현미가 1998년 4월 9일 중국 장춘의 한 호텔에서 북에 남겨진 동생 김길자씨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4일 세상을 떠난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는 한국전쟁 당시 북에 두 동생을 두고 온 이산가족이다.

고인은 생전 ‘이산의 아픔’에 대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아픔을 모른다”며 비통한 심정을 드러냈다.

현미는 북에 남겨진 동생 중 한 명인 김길자씨와 1998년 중국에서 상봉했는데, 이후 그리움에 우울증까지 앓았다고 한다.

고인은 생전 “통일은 고사하고, (이산가족간) 왕래는 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는 바람을 내비쳤지만, 현실화하지 못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표현한 노래 ‘보고 싶은 얼굴’은 고인의 대표곡으로 사랑받았다.

4일 세상을 떠난 현미가 1998년 4월 9일 중국 장춘의 한 호텔에서 북에 남겨진 동생 김길자씨와 사진을 찍고 있다. KBS 유튜브 캡처

현미는 1938년 평양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러다 1950년 한국전쟁 1·4 후퇴 때 부모와 6남매가 남한으로 내려왔다.

이 과정에서 조부모 집에서 지내던 어린 두 동생과 헤어졌다.

고인은 2018년 KBS 방송에 나와 “항상 우리 이산가족들은, 마음속에 두고 온 두 동생이 있다. 마음속에 명자 길자가 자리잡고 있다”며 애통해했다.

그래도 현미는 1998년 동생과 상봉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살아서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워요”라고 했다.

이어 “걔(김길자씨)도 ‘다른 거 아무것도 없고 언니 오빠 건강만 해라. 그래야 우리가 만날 수 있으니까’ 그래요”라고 전했다.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거론하며 “그래도 유학을 한 사람이고, 나이는 젊지만 마음의 문만 열어준다면”이라며 ‘이산가족간 왕래’의 희망의 끊을 놓지 않았다.

4일 세상을 떠난 현미가 2020년 가상현실(VR)로 구현한 평양의 고향집을 체험하고 있다. MBC 유튜브 캡처

고인은 같은해 MBC 방송에서는 “평양냉면을 먹을 때마다 6.25 전쟁 중 헤어진 두 동생을 떠올린다”며 한탄했다.

현미는 “(김길자씨와 만남 이후) 다녀와서 하루에 한 스무 번씩 울었다. 계속 눈물이 나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병원에 가니까 우울증 초기 증상이니 환경을 바꾸라고 하더라. 미국 아이들한테 가서 두 달 동안 치료받고 왔다”고 했다.

2년 뒤에는 현미가 가상현실(VR)로 구현한 평양의 고향집에 찾아가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고인은 당시 “명자야 길자야 너희들도 다 잘 있지? 9살하고 6살에 헤어졌는데, 70년이 지났네”라며 울음을 삼켰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