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세상을 떠난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는 한국전쟁 당시 북에 두 동생을 두고 온 이산가족이다.
고인은 생전 ‘이산의 아픔’에 대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아픔을 모른다”며 비통한 심정을 드러냈다.
현미는 북에 남겨진 동생 중 한 명인 김길자씨와 1998년 중국에서 상봉했는데, 이후 그리움에 우울증까지 앓았다고 한다.
고인은 생전 “통일은 고사하고, (이산가족간) 왕래는 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는 바람을 내비쳤지만, 현실화하지 못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표현한 노래 ‘보고 싶은 얼굴’은 고인의 대표곡으로 사랑받았다.
현미는 1938년 평양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러다 1950년 한국전쟁 1·4 후퇴 때 부모와 6남매가 남한으로 내려왔다.
이 과정에서 조부모 집에서 지내던 어린 두 동생과 헤어졌다.
고인은 2018년 KBS 방송에 나와 “항상 우리 이산가족들은, 마음속에 두고 온 두 동생이 있다. 마음속에 명자 길자가 자리잡고 있다”며 애통해했다.
그래도 현미는 1998년 동생과 상봉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살아서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워요”라고 했다.
이어 “걔(김길자씨)도 ‘다른 거 아무것도 없고 언니 오빠 건강만 해라. 그래야 우리가 만날 수 있으니까’ 그래요”라고 전했다.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거론하며 “그래도 유학을 한 사람이고, 나이는 젊지만 마음의 문만 열어준다면”이라며 ‘이산가족간 왕래’의 희망의 끊을 놓지 않았다.
고인은 같은해 MBC 방송에서는 “평양냉면을 먹을 때마다 6.25 전쟁 중 헤어진 두 동생을 떠올린다”며 한탄했다.
현미는 “(김길자씨와 만남 이후) 다녀와서 하루에 한 스무 번씩 울었다. 계속 눈물이 나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병원에 가니까 우울증 초기 증상이니 환경을 바꾸라고 하더라. 미국 아이들한테 가서 두 달 동안 치료받고 왔다”고 했다.
2년 뒤에는 현미가 가상현실(VR)로 구현한 평양의 고향집에 찾아가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고인은 당시 “명자야 길자야 너희들도 다 잘 있지? 9살하고 6살에 헤어졌는데, 70년이 지났네”라며 울음을 삼켰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