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사면’ 축협 쑥대밭…이영표·이동국 물러난다

입력 2023-04-04 07:35 수정 2023-04-04 10:20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직 사퇴를 발표한 이영표(왼쪽 사진)과 이동국. 뉴시스 자료사진

대한축구협회(KFA)가 최근 승부조작 연루 등의 사유로 징계 중인 축구인들에 대한 ‘기습’ 사면을 결정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전격 철회한 사태와 관련해 이영표·이동국 부회장, 조원희 사회공헌위원장이 줄줄이 사퇴했다.

이영표는 3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난주 축구협회의 징계 사면 관련 이사회 통과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부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는 “좋은 행정은 충분한 반대 의견과 다수의 목소리를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협회 일원으로서 축구 팬들의 모든 질책을 무거운 마음으로 통감한다”면서 “부회장으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다. 있어야 할 곳에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동국도 이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선수로서 받은 많은 사랑을 행정으로 보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협회에 들어왔지만 부회장으로서 제 임무를 해내기에 부족함이 많았다”며 “책임을 통감하며 해당 직을 내려놓으려 한다”고 전했다.

31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참석한 비리 축구인 사면 재논의 임시 이사회가 열리는 중 한 축구팬이 축구협회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그는 “지난 2월 축구협회 제의로 부회장직을 수행하게 됐다. 업무를 배우고 파악하는 시기였고, 내부적으로 상당부분 진행된 안건이었지만 경기인 출신의 경험을 자신 있게 말씀드려 막지 못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축구를 사랑하시는 팬분들, 동료 선후배들, 그리고 관계자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했다.

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을 맡아온 조원희 역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퇴를 알렸다. 조원희는 “축구협회 이사회에서 번복한 사면 건과 관련해 축구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린 점을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이번 일이 부끄럽고 부족한 제 모습에 스스로 큰 실망을 했다. 제 역량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껴 사회공헌위원장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말했다.

앞서 축구협회는 지난달 28일 한국과 우루과이의 축구 대표팀 평가전을 앞두고 서울월드컵경기장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어 각종 비위 행위로 징계를 받은 전·현직 선수, 지도자, 심판 등 100명을 사면키로 결정한 바 있다. 사면 대상에는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가 제명된 선수 50명 중 협회가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한 2명을 제외한 48명도 포함했다.

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31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비리 축구인 사면 재논의 임시 이사회를 마친 후 승부조작범 등 사면 전격 철회 입장을 발표한 후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승부조작 사건의 당사자들을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유로 충분한 논의 과정도 없이 갑작스럽게 사면한 데 대해 축구계 안팎에서 거센 비판이 터져 나왔다. 결국 축구협회는 지난달 31일 이사회를 다시 열어 사면을 철회하는 촌극을 빚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이사회 직후 “이번 결정 과정에서 저의 미흡했던 점에 대단히 송구하게 생각한다. 축구 팬과 국민께 이번 일로 큰 심려를 끼쳐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면서 “저와 협회에 가해진 질타와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보다 나은 조직으로 다시 서는 계기로 삼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