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태국 파타야에서 20대 남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이른바 ‘파타야 살인 사건’의 공범 윤모(40)씨가 범행 7년 5개월 만에 1심에서 징역 14년을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로 2년여전 1심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주범 김모(39)씨와 윤씨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살인 혐의을 부인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가 모두 인정된다”고 봤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재판장 최경서)는 지난달 31일 윤씨에게 “김씨에 비해 살의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가볍지는 않다”며 징역 14년을 선고했다. 10년간의 전자장치 부착도 명령했다. 하늘색 수의를 입고 증인석에 서서 선고를 들은 윤씨는 재판장과 방청석에 앉은 변호인에게 한 번씩 인사를 한 후 별다른 말 없이 돌아갔다.
윤씨는 주범 김씨와 함께 2015년 11월 19~20일 태국 파타야에서 20대 프로그래머 임모씨를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후 사체를 유기한 혐의(살인·사체유기)로 재판을 받아왔다. 조사에 따르면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던 김씨는 임씨를 태국으로 데려가 통합관리자시스템 개발 등의 업무를 맡겼다. 김씨의 지인인 윤씨는 자신의 거처를 사무실로 제공했다. 김씨는 평소 개발 업무가 늦어진다거나 도박사이트 정보를 유출했다는 등의 이유 등을 들어 임씨를 지속해서 폭행해왔다.
범행 당일 윤씨는 김씨로부터 임씨가 한국에 있는 지인에게 사무실 주소를 유출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야구방망이 등으로 임씨를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단속을 피해 사무실을 방콕에서 파타야로 옮기려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야구방망이와 전기충격기 등을 이용해 폭행을 이어갔다. 재판부는 임씨가 이때 폭행으로 인한 뇌부종 등으로 사망했다고 봤다.
당초 2020년쯤 김씨와 윤씨는 서로 자신이 아닌 상대방이 야구방망이 등을 사용해 임씨를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두 사람은 야구방망이를 이용한 폭행은 없었다는 취지로 말을 바꿨다. 김씨는 윤씨가 흙길에서 미끄러진 피해자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야구방망이를 쓴 것이라고도 진술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윤씨가 한국에 송환된 후 지인을 통해 김씨에게 연락했는데, 두 사람이 임씨 사망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며 “손이 아닌 야구방망이로 끌어올리려고 했다는 건 경험칙에 비춰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윤씨는 사건 다음 날인 2015년 11월 21일 자수했다. 김씨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였지만 태국 현지 법원은 윤씨에게 살인과 마약 등 혐의로 2016년 10월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2021년 9월 태국 사면으로 출소한 윤씨는 지난해 4월 한국으로 송환돼 재판을 받았다. 이번에 선고된 14년 형에는 태국 등에서 복역한 4년 6개월이 산입됐다. 범행 후 베트남으로 도주했다가 2018년 3월 검거된 김씨는 2021년 2월 1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도박사이트와 관련성이 없으므로 살인할 의도도 없다는 윤씨 측 주장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부업을 하는 윤씨가 해당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는 지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수익을 받았고, 김씨에게 사이트 관리를 맡겼다’는 취지의 김씨 진술을 토대로 도박사이트 운영의 이해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윤씨도 도박사이트 정보 등을 유출한 임씨를 폭행할 의도가 충분했다고 본 것이다.
또 재판부는 “윤씨 주장처럼 폭행을 김씨가 주도하고 일부 가담했을 뿐이라고 해도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며 “폭행을 주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살인죄의 죄책을 면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