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저만 남기고 모두 떠나…다른 이름으로 살아온 75년”

입력 2023-04-03 13:02 수정 2023-04-03 15:29
3일 오전 제주4·3희생자 유족들이 각명비 앞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문정임 기자

“7살 저만 남겨두고 온 가족이 떠나던 날, 끔찍했던 날. 쉬어지지 않는 숨을 겨우겨우 뱉어내며 살아내느라 아버지가 주신 소중한 성도, 호적도 잃어버렸습니다. 가족이 보고 싶을 때마다 칼날 같은 그리움이 가슴을 뒤덮었습니다. 그리운 가족, 보고 싶은 가족. 이름을 한명한명 불러봅니다.”

4·3의 광풍 속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아 남은 박삼문씨의 목소리가 3일 제주4·3평화공원에 울려 퍼졌다. 현영휴 할머니, 김신현 어머니, 이화서 큰 형님, 이화옥 작은 형님, 이지자 누님 그리고 이배근 아버지. 가족의 이름을 한자한자 부르는 박삼문씨의 떨리는 목소리를 따라 4·3평화공원 곳곳에선 벚꽃잎이 비처럼 흩날렸다.

제75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이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됐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처음 열린 추념식에는 바람이 강하게 부는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유족과 도민 등 1만명이 추념광장을 가득 메웠다.

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과 각명비, 행방불명인표석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유족들이 모여 간단한 음식과 술을 올렸다. 낡은 손수건으로 비석을 닦으며 눈물을 훔치는 유족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올해 추념식 유족이야기의 주인공은 박삼문 할아버지였다. 1941년 이삼문으로 태어났지만 일곱살에 가족이 모두 죽자 다른 가족의 일원이 되면서 1953년생 박삼문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지난 2016년 68년만에 제주를 찾아 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서 돌아가신 가족의 이름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이름 옆에는 자신 역시 죽은 이름으로 기재돼 있었다.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이었다. 희생자 취소 신청으로 다시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한평생 가족없이 살아온 상처와 그리움은 이미 늙고 작은 가슴에 길고 깊은 자국을 새겼다.

3일 제주4·3희생자 추념식을 찾은 유족과 도민이 각명비를 둘러보고 있다. 문정임 기자

3일 제주4·3평화공원 추념광장에 유족과 도민 1만여명이 참석했다. 제주도 제공

3일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 윤석열 대통령을 대신해 한덕수 국무총리(사진 맨 앞줄 왼쪽부터 네 번째)가 참석해 추념사를 대독했다. 제주도 제공

올해 추념식은 오전 10시 정각 사이렌 소리에 맞춰 4·3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시작으로 개막 영상, 헌화·분향, 국민의례, 인사말, 경과보고, 추념사, 추모 공연, 유족 이야기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당선인 신분으로 추념식장을 찾았던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정부 대표로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해 대통령 명의의 추념사를 대독했다. 한창섭 행안부 장관 직무대행,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등도 참석했다.

추념식에선 4·3을 소재로 한 소설 ‘순이삼촌’의 저자인 현기영 작가가 그동안 제주4·3이 걸어온 길을 영상으로 설명했다.

박주영 제주대 총학생회장과 박혜준 표선고 학생은 미래 세대의 의지를 담은 메시지를 낭독했다.

뮤지컬 배우 카이와 김소현, 이예은 어린이 등은 추모 공연으로 추념식 분위기를 더했다.

본 행사 후에는 추념식 봉행 이후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문화제가 열렸다. 가수 송가인과 이정, 제주도립무용단이 4·3의 아픔을 위로하는 공연을 선보였다.

행사가 끝난 뒤 참배객들은 위령 제단에 헌화·분향하며 4·3 영령을 추모했다.

한편 2014년 정부는 4월 3일을 국가기념일인 ‘제주4·3희생자 추념일’로 지정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