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최신판에 인종차별적인 내용으로 독자에게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문이 추가됐다. 경고문에 이어 첨부된 백인 작가의 비판문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출판사 팬맥밀란이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최신판 서두에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을 실었다고 1일(현지시간)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이 보도했다. 트리거 워닝이란 작품에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음을 알리는 경고문이다.
출판사는 경고문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인류사에서 충격적인 시대와 노예제의 공포를 낭만적으로 다뤘다”며 “문제가 되는 요소를 포함하는 소설”이라고 적었다. 또 “이 소설은 용납할 수 없는 관행, 인종차별적이고 고정 관념적인 묘사, 문제가 되는 주제, 언어, 이미지가 포함돼 있다”며 “상처를 주거나, 정말로 해로운 구절과 어휘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경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경고문 뒤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백인 우월적인 요소를 설명하는 별도의 에세이를 실었다. 백인 작가 필리파 그레고리는 에세이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인종차별을 옹호하고, 백인우월주의를 미화하고 설파한다”고 지적했다. 또 “아프리카 출신은 백인과 다른 종이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바로 이 거짓말이 소설을 망쳐놓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 소설이 이른바 ‘잃어버린 대의론’을 낭만적으로 표현하려 했다고도 비판했다.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를 옹호한 미국 남부연합의 대의가 정당했다는 식의 근거 없는 믿음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리파 그레고리는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역사소설을 주로 써왔다. 팬맥밀란은 주류 백인 작가에게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비판을 맡긴 것에 대해 “소수자 출신 작가에게 ‘주류층을 일깨우는’ 감정노동을 주문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 소설가 마거릿 미첼이 1936년 발표한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남북전쟁은 미국에서 노예제를 옹호하던 남부연합과 폐지를 주장하던 북부 연방 사이에서 벌어진 남북전쟁 전후 시기를 다룬 작품이다.
소설은 남부 플랜테이션 소유주의 딸 스칼렛 오하라가 북부의 침공으로 안위를 위협받으면서 맞닥뜨린 인생의 역정과 레트 버틀러와의 로맨스를 그렸다. 스칼렛 역을 맡은 비비안 리의 열연이 돋보인 동명의 영화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영화는 1940년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는 최신판에서 원문의 표현을 변경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팬맥밀란은 “원본의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문 전체를 그대로 두기로 했다”고 밝히면서도 “작품 속에 쓰인 캐릭터 표현이나 내용, 언어를 승인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영은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