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운동으로 해고 철회…“경비아저씨 눈물” 주민 후기

입력 2023-04-03 09:58 수정 2023-04-03 14:21
주민 A씨가 엘리베이터에 붙인 경비원 해고 취소 호소문과 주민 동의서. 네이트판 캡처

대구 달서구 상인동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들이 합심해 해고당한 경비원의 재고용을 이끌어 낸 사연의 후기가 전해졌다.

이번 사건을 공론화한 해당 아파트 주민 A씨는 2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 “대구 아파트 경비원 부당해고 갑질 후기를 들고 왔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B경비원의) 해고가 철회됐다”며 “다만 ‘3개월 초단기’로 재계약이 됐는데, 이는 현재 우리 아파트의 다른 경비 아저씨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 부분이라 특혜를 주긴 어렵다는 게 관리업체의 말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계란으로 바위 치는 상황이었다. 평범한 입주민에게는 넘을수록 큰산이었다. (대자보나 동의서를 붙이면) 몇 번이고 훼손되고 수거됐다. 다시 또 붙이고 붙일 때마다 ‘이게 정말 될까’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은 때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기꺼이 뜻을 함께해주신 아파트 입주민분들과 응원 댓글 달아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계란이 바위가 될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푸르른 잎들이 올라오는 4월, 해당 경비 아저씨는 출근하셨다. 눈시울을 붉히시며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여러분이 함께해주신 덕분”이라며 “이 일이 노동 사각지대에 있는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가장이신 다른 경비 아저씨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선례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전했다.

입주민들이 경비원 해고 결정에 항의하며 남긴 메모들. 네이트판 캡처

A씨는 항의 과정에서 다른 주민들이 엘리베이터 등에 한마음으로 붙인 메모들을 일일이 찍어 올렸다. 주민들은 메모를 통해 “주민이 원하는 경비 아저씨를 보내면 다음은 없다” “그분처럼 성실하고 친절한 분을 본 적이 없다. 해고하는 근거를 대라” “생계를 잃은 한 사람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B경비원을 해고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A씨는 해고 철회가 확정된 이후 자신이 아파트 내부에 게시한 안내문도 첨부했다. 그는 “약 489가구 서명을 받은 동의서를 근거로 아파트 관리업체와 만나 B경비원의 해고 철회를 받아냈다”고 알리며 “입주민들이 함께 의견을 모아 ‘우리’가 주인이 되는 아파트라는 걸 보여줬고, 사회적으로도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정의로운 일을 해내었다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주민 A씨가 엘리베이터에 붙인 경비원 해고 철회 안내문. 네이트판 캡처

이번 사건은 A씨가 지난달 26일 네이트판에 올린 글을 통해 수면 위로 올랐다. 당시 글에서 A씨는 “우리 아파트에서 2019년부터 4년여간 근무하신 경비원 아저씨는 노인들의 짐을 다 들어드리고 집집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맡아 해주시는 따뜻하고 성실한 분이다. 그런데 2월 말 갑자기 계약만료 통지서를 통해 해고 통보를 받으셨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아파트 내 엘리베이터에 대자보와 해고 취소 동의서를 붙이며 행동에 나섰다. 대자보에는 “B경비원 아저씨는 아파트의 크고 작은 일을 책임지고, 우리 곁을 지켜주는 가족 같은 분”이라며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가장인 경비 아저씨의 손을 잡아주는 품격 있고 따뜻한 주민이 되길 간절히 원한다”고 적었다.

주민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해고 취소 동의서가 관리소 측에 의해 일부 훼손되는 등 어려움도 있었으나 A씨는 끝내 입주민 수백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그가 온라인에 올렸던 글이 화제가 되면서 여론이 커지자 언론 보도도 이어졌다. 결국 입주민들의 단합된 힘으로 단칼에 해고될 뻔한 경비원의 재계약을 이끌어내게 된 것이다.

주민 A씨가 엘리베이터에 붙인 경비원 해고 취소 호소문과 주민 동의서가 아파트 관리소 측의 다른 공지문으로 가려진 모습. 네이트판 캡처

민주노총 대구본부 노동상담소 등에 따르면 당초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측이 B경비원을 포함한 일부 경비원이 업무에 소홀하다는 회의 의견에 따라 아파트 관리업체에 교체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B경비원은 지난 4년간 ‘3개월’ 단위로 계약을 연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에서는 ‘3개월 쪼개기’ 고용 계약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대구본부 노동상담소는 “당장은 입주민의 도움으로 계약이 연장됐지만 3개월 뒤 또다시 해고된다면 당사자가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하고 대응해야 한다”며 “공동주택 노동자들은 단체를 결성해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갑질 근절과 가해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꼭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