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두 범죄자 일가 서로 다른 행보

입력 2023-04-02 19:41

2023년 3월 31일.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전두환 일가 중 처음으로 손자 전우원씨가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에게 공식 사죄했다.

전우원씨는 “저희 할아버지 전두환씨는 5·18 앞에 너무나 큰 죄를 지은 죄인이자 학살자임을 가족 구성원으로서 인정한다. 정말 죽어 마땅한 저에게 사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제 가족들뿐만 아니라 저 또한 너무나 추악한 죄인인데, 오히려 광주시민 여러분께서 따뜻한 마음으로 저를 받아주시고 저를 사랑으로 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감사드리는 마음이 큰 만큼, 말로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삶을 의롭게 살아가면서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항상 회개하고 반성하며 살아가겠다.”면서 거듭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부디 정말로 항상 회개하고 반성하며 살기를 바란다.

한국 현대사에 큰 오점을 남긴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제 진압의 두 주범, 전두환과 노태우는 모두 대통령까지 지내며 천수를 누리다 사망했다. 물론 사망하기 전까지 광주시민과 국민에게 사과 한 번 한 적 없다. 전두환씨 같은 경우는 오히려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는 말들로 광주시민이나 국민의 마음을 후벼팠다.

그러나 이들의 가족들의 행보는 사뭇 달랐다. 노태우 일가는 노태우씨가 대법원에서 선고받은 추징금 2397억원(전두환씨가 선고받은 추징금은 2205억원)을 2013년에 완납했고, 노태우씨 아들 노재헌씨는 2019년 8월과 12월, 2020년 5월, 2021년 4월에 거듭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한 뒤 사죄하고 부친의 과오를 반성하면서 피해자와 유족들이 “이제 됐다”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무릎을 꿇겠다고 말하는 등 사과와 반성의 진정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비해 전두환 일가는 미납 추징금 922억원을 납부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광주시민과 국민에게 사과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전두환 비자금으로 여전히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전우원씨는 “전두환 비자금이 숨겨져 있는데, 그 검은돈으로 가족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고, 자신의 아버지인 전재용씨와 어머니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신분 세탁이나 차명 계좌 등을 통해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라고 폭로한 바 있다.

전우원씨의 폭로가 사실인지는 앞으로 정부가 밝혀야 될 일이겠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권력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착취한 범죄수익으로 가족들이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므로 후안무치(厚顔無恥)도 이런 후안무치가 없다. 지난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족들을 고통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넣어 놓은 자의 가족들에게 이런 호화로운 삶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래도 광주시민들은 전우원씨를 따뜻하게 맞았다고 한다. 광주시민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만으로도 마음의 문을 연다. 극악무도한 학살자라도 기꺼이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이번 전우원씨의 사죄를 계기로 부디 전두환 일가가 노태우 일가가 걸어온 반성의 길을 따라가기를 바란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