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선변호사, ‘법대로’를 주장하는 우리의 뿌리는?

입력 2023-03-31 17:01

알고 보면 역사가 꽤나 오래 된 직업군이 있다. 바로 변호사이다. 변호사는 소송대리를 주된 직무로 하는 법률전문직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나름대로 선망 받는 직업으로 분류되곤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직역이 공식적으로 합법이 된 시점이 갑오개혁 이후로서 불과 130여 년 전이라는 사실이다.

이른바 ‘외지부(外知部)'로 불린 조선시대 변호사는 조선왕조 내내 불법이었다. 당사자 직접소송만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외지부라는 명칭은 도관지부에서 유래했다. 법률을 관장하는 국가 관청인 도관(都官)의 관리 직책인 지부(知部)와 달리, 도관 밖에서 지부 노릇을 하는 자라는 뜻이다. 이들은 속된 말로 ‘야매’였기에 늘 음성적으로 활동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상당한 인기를 누렸고 금전적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극적인 요소 덕분에 외지부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외지부 활동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외지부 이야기는 2011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한데 이어, 2020년도에는 웹툰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이번 주부터는 웹툰 원작의 드라마도 방영될 예정이라고 하여 눈길을 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소송문화는 어떠했을까? 인본과 도덕, 예의를 중시하는 유교적 가치를 고려하면 소송보다는 가족이나 향촌 공동체 내에서 자체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을 선호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백성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관아에 적극적으로 소장(訴狀)을 제출했다. 이러한 양상은 조선시대의 개방적 소송제도에서 비롯된 측면이 커 보인다.

중국 명(明)과 청(淸) 역시 비교적 소송이 자유로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소장의 접수가 1년에 8달, 그 중에서도 한 달에 6일만 가능했던 것과 달리 조선은 관청 휴무일과 일부 농번기를 제외한 모든 날에 소장을 제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신분이나 성별 등이 소장 제출에 제약이 되지 않았다는 점도 큰 몫을 했다. 고문서들을 분석한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여성은 물론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도 수령에게 자유롭게 소지(所志)를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경국대전」에는 세 번의 소송에서 한쪽이 두 번 승소하면 다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있었는데, 이 규정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나름의 상소제도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심급제도에 비하면 엉성하지만, 분쟁에 대해 단계별로 관의 처분을 호소하며 다툴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어 보인다.
조선왕조는 표면상으로는 소송 없는 사회를 성리학적 이상향으로 삼고, 소송을 부추기려는 외지부를 처벌하기도 했지만, 사실상 백성들이 현실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을 억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심판을 통해 분쟁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사회를 유지하는 것을 관의 덕목으로 인식했던 것 같기도 하다.

“모르겠고, 법대로 해!” 한국인이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사는 말 중 하나다. ‘법에 대한 신뢰가 깊어서' 또는 ‘법치주의가 생활이 되어서'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대로 하면 최소한 본인이 손해 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법은 자신의 편일 것이란 생각도 기저에 깔려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실제로 우리나라의 인구당 연간 평균 소송 건수는 비슷한 사법시스템의 일본과 비교했을 때 5배 이상 많다. 반면 재판절차에서 판결이 있기 전에 당사자 간 조정이나 화해로 분쟁이 해결되는 비율은 일본보다 현저히 낮다고 한다.

보통 소송제도의 발전은 사회구성원의 권리의식과 비례한다는 점에서 우리 국민의 내면에는 권리의식과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마음이 짙게 깔려 있는 듯하다. 다만 상대방을 믿지 못하고 조금도 손해 보기 싫어하는, 다소 각박한 마음 씀씀이가 우리내 DNA에 적혀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씁쓸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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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대륙아주 강우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