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 여성과 불륜 관계를 통해 생긴 아이의 출생신고를 생부는 사실상 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현행 가족관계 등록법은 위헌이라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했다. 헌재는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독자적 기본권이라면서 ‘혼인 외 출생자’(혼외자)의 출생신고 제약을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최근 가족관계등록법 46조·57조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법 조항 위헌성을 인정하지만 해당 조항을 즉각 무효로 했을 때 초래될 혼선을 막기 위해 국회가 대체 입법을 할 수 있도록 시한을 정해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헌재는 2025년 5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결정했다.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은 기혼 여성과 불륜관계로 아이를 낳은 아버지들과 이들의 자녀들이다. 청구인들은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상 아버지가 현실적으로 아이들의 출생신고를 하기 어렵다며 헌재 판단을 요청했다. 헌재는 결정에서 아이들의 헌법소원은 받아들였지만 가족관계등록법이 생부의 권리까지 침해한 것은 아니라며 생부들의 헌법소원은 기각했다.
가족관계등록법 46조에 따르면 혼외자 출생신고 의무는 생모에게 있다. 57조는 생모와 불륜관계인 생부가 혼외자의 출생신고를 할 수는 있지만 이는 생모가 소재불명이거나 특정할 수 없는 경우 등에 한정된다고 규정한다.
헌재는 이 같은 내용의 가족관계등록법이 혼외 관계로 출생한 아이들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헌재는 혼외자를 낳은 여성이 남편이 알게 될까 봐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국가는 출생신고권이 있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라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를 침해 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는 출생 후 아동이 보호받을 수 있을 최대한 빠른 시점에 출생 관련 기본 정보를 국가가 관리할 수 있도록 등록할 권리”라고 정의했다. 이어 이런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자 자유로운 인격 실현을 보장하는 자유권적 성격과 건강한 성장·발달을 보장하는 사회적 기본권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현행 출생신고제도는 혼인 중 여자와 남편 아닌 남자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의 출생등록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