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주택용 전기 요금에만 누진세 적용 정당”… 9년 만에 결론

입력 2023-03-30 11:27

주택용 전기요금에 적용되는 ‘누진제’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첫 소송이 제기된 후 9년 만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30일 박모씨 등 87명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현행 전기요금은 주택용·일반용·산업용·교육용·농사용 등 용도 별로 차등요금제가 적용하지만, 전기를 많이 쓸수록 단가가 높아지는 누진제는 주택용에만 적용된다.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1973년 1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이듬해 말 처음 도입됐다. 국제유가가 급등해 전기 공급량이 부족해지자 국가 차원에서 가정용 전력 소비를 줄이고 산업력 전력을 확보한다는 목적이었다. 12단계, 9단계, 6단계 등 여러 차례 누진 구간 조정을 거쳐 2016년부터 3단계 체제로 재편됐다.

하지만 전력 사용량이 많을수록 요금이 비싸지기 때문에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여름철마다 ‘전기요금 폭탄’ ‘복불복 요금’ 같은 부정 여론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국내 전기 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에는 누진세가 적용되지 않아 형평성 논란도 계속됐다.

이번 소송은 박씨 등이 2014년 “한국전력이 위법한 약관을 통해 전기요금을 부당 징수한다”며 일부 요금 반환 요구를 하면서 시작됐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가 주도한 소송으로도 관심을 끌었다.

1심과 2심은 한국전력의 손을 들어줬다. 전기요금 약관이 사용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며, 전기위원회 심의·기획재정부 장관 협의·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인가 등 절차를 거친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을 인정했다. 한국전력이 유일한 전기판매사업자라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자신들에게만 유리하게 약관을 작성한다거나 전기요금을 책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정된 필수공공재인 전기의 절약 유도 등 사회정책적 목적상 필요성도 인정된다고 봤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기판매사업의 공익적 성격, 법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점, 전기사용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되고, 특히 주택용 전력 사용자의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해도 누진제가 부당하게 불리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