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서울의 한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에서 만난 은정(17·가명)양은 요즘 유행하는 짧은 상의, 긴바지에 모자를 쓰고 귀걸이까지 한 모습이었다. 영락없는 남한 MZ세대 차림새였다. 은정양은 “이 학교 오기 전에 지방의 대안학교에 다녔다. 인근에 노래방도 없고 친구들이랑 놀 데가 없어서 이 학교로 옮겼다”면서 “주중에 학교도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한다. 주말엔 남자친구도 만나 맛집도 찾아다니고 쇼핑하는 게 데이트 코스”라고 말했다.
통일부 발표(2022년)에 따르면 국내 입국한 탈북민 가운데 0~29세(입국 당시 나이 기준)는 1만4709명으로 전체의 40%가 넘는다. 한국교회가 남한의 MZ세대 복음화를 고민하듯 탈북MZ들을 향한 관심도 가져야 할 이유다. 하지만 20년이 넘은 한국교회 탈북민 선교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게 탈북민 사역자들의 진단이다. 이들은 “새 시대를 위한 맞춤형 접근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은다.
불과 십 수년전 만해도 일명 ‘꽃제비’들이 북한을 탈출한 경우가 많있다. 꽃제비는 특정 거주지 없이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북한인들을 지칭하는 은어였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는 북한에서 엘리트 교육까지 받고 남한 문화에도 익숙한 청소년들이 탈북민 대열에 합류하는 분위기다.
탈북 청소년 사역 15년째인 교사 A씨는 확바뀐 탈북 청소년의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A씨는 29일 “10여년 전만 해도 머리는 산발이고 영양실조에 걸려있으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며 “그때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끼니를 해결해 주고 기초 교육을 했다면 지금은 대학 진학이나 자아실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소 남한 문화를 많이 접한 탈북MZ들은 웬만한 연예인 이름은 다 알 정도다. 외모에도 관심이 많아 성형수술을 하는 등 이전 세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아직 한국교회는 이들 탈북MZ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탈북민 한수(21·가명)씨는 “2020년 남한에 들어와서 한 교회 북한선교부에 출석했는데 같은 또래가 없었고 40,50대 어른들이 많았다”며 “매주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게 재미가 없어 교회에 안 나가게 됐다”고 털어놨다. 탈북 청소년 준호(16·가명)군은 같이 교회에 다니던 남동생(11)이 한 달 만에 교회를 그만둔 걸 안타까워했다. 그는 “교회에 동생 또래의 친구가 없어서 동생이 흥미를 잃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 한 명만 있어도 동생은 계속 교회에 다녔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탈북민들이 줄어든 대신 상대적으로 중국에서 출생한 탈북민 자녀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이들은 북한 출신 여성이 인신매매로 중국에 팔려갔다가 태어난 자녀들로 이른바 ‘중국출생 MZ’들이다. 이런 경우 엄마는 남한으로 도망치고 자녀는 아빠 밑에서 학대를 받다가 남한으로 쫓겨나는 사례가 많다. 그들 중에는 엄마는 북한인, 아빠는 중국인, 새아빠는 한국인 경우도 더러 있다. 이들을 돌보는 건 또 다른 과제다. 경제·교육적인 부분에 이어 정서적 돌봄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대안학교 교사인 B씨는 “남한에 있는 탈북민 출신 엄마는 이미 새 가정을 꾸려 아이를 돌보기 힘들고, 결국 아이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깊게 베어 있다. 또 이런 아이들은 한국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북한에서 온 아이들보다 적응이 더디다”고 설명했다. 중국출생 MZ들이야말로 한국말부터 가르쳐야 하는 ‘미전도 종족’이다.
B씨는 “교회가 부모처럼 무조건적인 헌신과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의 마음은 반드시 열린다”며 “교회에서 찬양팀 같은 역할을 주거나 음악 미술 등 흥미를 가지는 분야를 가르치는 게 효과적”고 덧붙였다.
박용미 기자, 이현성 인턴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