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식인(iN)에서 ‘지식인 할아버지’로 불리며 추앙받은 조광현옹이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조옹은 27일 오후 10시쯤 서울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9일 전했다.
조옹은 ‘녹야(綠野)’라는 아이디로 2004년부터 지난해 11월 10일까지 수만 건의 답변을 남겼다.
치과의사인 그는 자신의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와 쉴 틈 없이 소통해왔다.
고인은 의학 지식은 물론 뛰어난 한문 실력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조옹의 결정적 한 방은 재치 있는 답변에 있었다.
예컨대 조옹은 “할아버지, 제가 요즘 공부도 재미없고 지루한데 조언 좀 해주세요”라는 물음에 “나는 공부가 재미없고 지루한 사람한테는 할 얘기가 없습니다. 내 얘기도 지루할 테니까요”라고 응수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은 세뱃돈이나 한 달 용돈이 얼마 정도나 될까요”라는 질문에는 “그런 생각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꾸 살기가 힘들어지고 싫어집니다”라고 답했다.
“산타 할아버지 나이는 몇 살인가요?”라는 물음에는 “아빠 나이와 동갑입니다”라고 했다.
고인은 “조광현 할아버지께서 살아오시면서 겪으신 일 중 가장 기뻤던 일과 보람 있었던 일 3가지가 궁금합니다”라는 질문에 보람 있었던 일로 “내가 알려준 지식 때문에 상당한 인간적인 대우와 이득을 봤다고 고마워할 때”를 꼽기도 했다.
방대한 답변 건수 역시 조옹의 트레이드 마크다.
고인은 지식인 통계시스템이 구축된 2008년부터 지난해 11월 10일까지만 해도 5만3839건의 답변을 남겼다.
이중 채택 답변은 2만7883건, 답변채택률은 70.5%로 집계된다.
조옹이 도움을 준 사람 수는 4만7630명이라고 나온다.
고인은 안방 침대 바로 옆에 컴퓨터를 놓고 자다가도 일어나서 답변을 달았다고 한다.
조옹은 이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하수-평민-시민-초수-중수-고수-영웅-지존-초인-식물신-바람신-물신-달신-별신-태양신-은하신-우주신-수호신-절대신’ 등급 중 두 번째로 높은 수호신 등급에 올랐다.
그러나 건강이 발목을 잡았다.
조옹은 2017년 2월과 2018년 10월에도 건강 악화로 두 차례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가 아쉬워하는 팬들의 성화로 활동을 재개했다.
시력이 크게 손상된 탓에 돋보기 두 개를 겹쳐 보며 ‘독수리타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야 하고, 손목보호대를 차야 했다. 그래도 답변을 멈추지 않았다.
조옹의 마지막 답변은 “어젯밤 11시쯤 자고 있는데 침대가 흔들려서 깼어요”란 질문에 대한 것이다.
고인은 “그런 경우가 더러 있어요.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피차간의 예의랍니다”라고 답했다.
조옹은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복고,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뒤 1962∼1995년 서울 종로→신촌→홍대입구에서 영진치과를 운영했다.
고인은 1985년 제7회 치과의료문화상, 1994년 제2회 서울치과의사회 공로대상, 2008년 네이버 파워지식IN상을 받았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