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당시 교육부는 졸업정원제를 도입했다. 필자가 재직한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도 졸업 정원이 60명인데, 30%인 18명을 더해 78명이 됐다.
졸업시험을 통해 제한된 정원만을 졸업시켜야 했다. 대학생들이 졸업을 위해 정치 시위에 한 눈 팔 지 않을 것이라는 군부 정권의 속셈이었다.
70년대 후반엔 고려대 신방과 신입생은 전공과 학과 구분없이 정경대를 지원했다.
즉 교양 공통 과목을 1년 이수하고 정경대 내 경제학과와 행정학과, 정치학과 통계학과, 그리고 신문방송학과 중에서 전공을 선택하는 절차였다.
정경대 지원자 대부분이 특정과로 쏠리는 경향 때문에 신문방송학과는 학생 유치를 걱정하곤 했다.
필자기 고려대로 부임 후 5년간 신문방송연구소장 매체연구실장 교무행정위원의 직책을 힘겹게 감당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대 80년 학과장 보직을 맡고나니 학과의 가장 큰 숙제는 신입생 충원 문제였다.
그런데 교육부의 졸업정원제 덕분에 입학 정원이 78명이 됐고 숙제가 그냥 풀렸다.
게다가 신방과도 시류를 타면서 전국 각지의 인재들이 몰려 들었다.
81학번은 그래서 입학 때부터 신방과의 활력소이고 원동력으로 환영 받던 졸업생이다.
바로 그 81학번 고려대 제자들이 2022년 9월 23일, 필자를 초대했다.
그리운 얼굴이 함께 모인 광화문 식당에서 만찬을 즐겼다.
81년도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던 해에 나는 신문방송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었다.
사제지간으로 만나고 40년 세월이 지났다.
2011년 가을 ‘81학번 졸업 30주년 모교 방문축제’에 참석한 걸 감안하면 대부분 10여 년 만에 보는 얼굴들이다.
81학번과 만찬 사진을 본 고대 법대 출신 고교 후배 최종문 전 전주대 학장이 이메일을 별안간 보내왔다.
“이번 고려대 제자들과의 모임 사진은 원 석학님의 제자 사랑은 물론이고 제자들의 원 선배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가늠케하는확실한 물증으로 읽혀 졌습니다.”
최 학장의 이메일을 읽고 잠자리에 들어간 그날은 왠지 함께 했던 81년 제자들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30여년 마음의 고향이 되어버린 안암골을 이모저모 되짚어 봤다.
사실 참석 전 제자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주로 듣고 내 얘기는 가급적 적게 하자고 마음 먹었다.
말을 많이 하는 대신 내 간증집 ‘우현, 원우현의 생애와 철우사상’을 나눠 주었다.
그러나 마이크를 잡으면 50분은 쉬지 않고 강의하던 30년 습성 때문에 또 실패(?)했다.
참석한 제자 한사람씩 나름 옛날을 기억하면서 회상했다.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자리 잡은 지성과 야성의 제자들이 어느덧 강하고 지혜로운 인물로 성장한 걸 직접 보니 흐뭇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회 장로로서 하나님이 지혜라는 걸 제대로 전파하지 못한 자괴감이 크다.
성경 고린도전서 1장 25절 말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연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를 가르쳐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자들 마음 판에 예수 그리스도를 심어 주거나 애쓴 흔적도 없어 민망했다.
필자가 만찬에서 처음 언급한 제자는 애석하게 이미 소천한 여학생 안성주였다.
고 안성주는 안타깝게 얼마 전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재학시 80년 정권에 저항하던 여학생 선봉장이었다.
미인 이화실도 안성주 친구로 서로 격려하면서 지내던 사이다.
제자들과 같이 고 안성주의 별세에 명복을 빌면서, 여러분이나 필자도 하늘의 소집 명령을 받을 때는 미리 입소일을 통고 받을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늘의 소집명령이 덜어지면 누구든지 그대로 순종해야 하는게 숙명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난 30주년에 참석했던 채봉석 부부는 어디 있는지. 한국일보 편집부장직으로 있을 때 전화도 했었는데.
이 모임을 주선한 윤석암 회장은 현재 대기업 사장이다.
그날 고대 재학시절 필자가 외국항공사 취직을 알선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언론진흥재단 고위직을 두루 거친 최대한, 독서를 많이 즐기는 최광범에겐 책 냄새가 풍겼다.
송시열의 제자 윤증을 즉시 맞췄던 언론진흥재단의 윤현배는 영화배우 율 브리너 머리 모양에 명석한 사나이 기풍이 역력했다.
홍성필 한국스포츠국장 출신은 경복고 후배라고 친근하게 불러도 웃지 않고 어쩐지 매력적이다.
김문연 위원장은 서울드라마어위즈 조직위원장으로 그 분야 선두 주자다.
남편 김성수 교수를 여의고 자녀 교육과 순천향대 심미선 교수.
‘편지, 쓰고 볼 일입니다’ 저자 김정응 작가는 내가 주례할 때 사회를 전담했었지….
무엇이든 읽고 또 읽고 쓰고 다시 쓰는 지혜와 노련미가 풍긴다.
MBC 은퇴 후 MBC 자회사 이사인 장혜영, 고려대와 친구들에게 헌납을 해온 김희경 박사, KBS TV에서 자주 보던 감일상 국장, 고려대 부총장급 직책에 임명된 후 때마다 선물을 보낸 마동훈 교수, 현재 미디어경영학회 회장 숙명여대 전 처장 박천일 교수, 애니메이션 선두 주자 박기종 대표 등 모두가 이 사회에서 역활을 잘 감당해온 듬직한 청출어람의 표본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유석 사무차장은 아들들이 꽤 유명하다.
장남은 국제 콩클에서 우승한 정한빈 피아니스트, 차남은 80만 구독의 유튜브 ‘깨방정’ 운영자 정승빈으로 KBS 공채 29기 개그맨이다.
“마셔도 사내답게 막걸리를 마시자.” 고려대 막걸리 찬가는 모임의 흥을 돋군다.
많은 대화들이 제자들의 옛 이야기였다. 서로가 엉뚱한 유머를 곁들이면서 분위기는 더 흥미롭고 풍성해졌다.
나도 모르게 80 노인 틀속에 소외됐던 필자도 모처럼 교실에서 강의하듯 신나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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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지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때문에 갓 말문이 열린 어린 아이처럼 떠벌려 댔으니 이를 연재에 쓰면서 쑥스럽지만 어찌하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선생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고전 4:15)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