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23일 “수사와 기소권은 헌법상 권한”이라면서도 “해당 권한을 검사 등 특정 국가 기관이 독점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수사권의 구체적 조정과 배분은 국회가 입법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사안을 두고 주요 쟁점마다 진보와 보수·중도 성향 재판관들이 4 대 4로 갈려 맞서면서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사실상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검수완박’ 권한쟁의 심판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검사에게 법률로 제한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고유한 수사권이 존재하는지’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헌법이 검사에게 영장 신청권을 보장하고 있고, 이는 강제수사 착수 여부에 관한 판단이므로 헌법이 검사에게 고유의 수사권도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재는 5대 4 의견으로 “법무부 장관은 검사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을 가질 뿐 수사·소추권을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라며 한 장관은 청구인 자격이 없다고 봤다. 수사 실무 당사자들인 검사들에 대해서도 “청구인 자격은 있지만 침해된 권한은 없다”면서 마찬가지로 청구를 각하했다.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 5명은 헌법상 영장 신청권은 수사과정에서 남용될 수 있는 강제수사를 법률전문가인 검사가 합리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1962년 도입된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조항의 방점은 어디까지나 강제수사 남용 가능성에 대한 통제에 있을 뿐, 이를 곧바로 헌법이 검찰에게 수사권을 보장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수사·소추권이 헌법상 권한인 것은 맞지만, 특정 국가기관에 독점적·배타적으로 부여된 게 아니며 구체적 조정과 배분은 헌법사항이 아닌 입법사항이라고 했다.
반면 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재판관은 “검사의 영장 신청권을 규정한 헌법 조항은 검사에게 ‘헌법상 수사권’을 부여한 것”이라며 정반대 의견을 냈다.
법안을 놓고 정치권과 여론이 쪼개졌 듯이 헌법재판관들도 사안마다 양쪽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다퉜다. 법무부·검찰 측 손을 들어준 중도·보수 성향 재판관 4명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청구에서도 “검수완박 입법 과정에서 국회법과 다수결 원칙이 위반됐다”며 권한 침해를 인정했다. 반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권한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캐스팅보트를 쥐었던 이미선 재판관(진보 성향 분류)이 어느 진영에 서느냐에 따라 주요 쟁점의 인용 여부가 갈렸다.
헌재는 이날 검수완박 입법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를 인정하면서도 법안 자체를 무효로 판단하지는 않았다. 검수완박 법안이 유지돼 검찰 실무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장관이 하위법인 시행령을 통해 경제·부패로 한정됐던 검찰의 수사영역을 다시 넓혀놨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잃은 4개 범죄 수사권 관련해 일부 공백이 있기는 하지만, 시행령이 있어 실무에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