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주일대사 5명 고언…“尹 결단은 높이 평가, 서두른 탓에 일본 호응 부족”

입력 2023-03-23 10:24 수정 2023-03-23 15:51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보도진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 원로들인 전직 주일본 한국대사 5명은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선제적으로 제시하고, 일본을 방문해 한·일 정상회담을 가진 것과 관련해 “한·일 관계를 정상화 궤도에 올려놓았다”며 호평했다.

전직 주일대사들은 그러나 한·일 관계 정상화 정책이 성급하게 추진하는 바람에 일본의 충분한 호응 조치가 없는 부분은 아쉽다는 쓴소리도 내놓았다.

전직 주일대사들은 윤석열정부가 향후 한·일 협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적 공감을 얻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일보는 윤 대통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한·일 관계 정상화 정책과 관련해 라종일·신각수·유흥수·이준규·강창일(역임 순) 전 주일대사와 23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유흥수 전 주일대사

“尹, 지지율 하락 알고도 결단”
유흥수 전 주일대사는 “박정희·김대중 대통령도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각각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일본문화개방을 추진했고, 이런 결단에 의해 우리나라가 한 단계씩 발전했다”며 “윤 대통령의 결단도 안보·경제 등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유 전 대사는 윤 대통령의 일본 방문 하루 전날이었던 지난 15일 윤 대통령과의 오찬 자리에 참석했다.

유 전 대사는 “윤 대통령이 ‘나도 지지율 떨어진다는 거 안다’고 그러더라”면서 “그 자리에서 박정희·김대중 대통령의 얘기가 나왔고, 다른 참석자들이 ‘두 전직 대통령들처럼 역사가 평가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말도 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정부의 마지막 주일대사를 지낸 강창일 전 대사도 강제징용 해법에 일본의 호응이 없는 부분은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의도는 좋다”면서 “지금이 시작”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강 전 대사는 이어 “한·일 정상 셔틀외교를 재개한 것은 큰 성과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준규 전 주일대사

이준규 전 대사는 “윤 대통령이 초기에 잘한 것은 일본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전 대사는 그러면서 “특히 윤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방한했던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를 만나 속 얘기를 많이 했고, 그때 아소 전 총리가 윤 대통령은 믿을만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며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서두른 탓에 일본 호응 제대로 못 얻어내”
다만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한 뒤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이 뒤따르지 않은 데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강창일 전 대사는 “외교라는 것은 서로의 국익을 위해 반반씩 양보하면서 명분을 줘야 하는데 일본이 요구하는 것을 100% 다 들어줘 버렸다”며 “윤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개인적 신뢰를 쌓는 데에는 이것이 도움이 됐겠지만, 국가 외교라는 것이 개인적 신뢰에 따라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주일대사를 지낸 신각수 전 대사는 “일부 국민들이 윤 대통령의 결정을 아직 납득하지 못하고 있고, 국무회의를 빌어 대국민 설명을 한 것이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전략적 판단은 옳았으나 한·미 정상회담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 일정이 있고 하니, 좀 서두르면서 일본으로부터 얻어낼 것을 제대로 못 얻어낸 느낌은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윤 대통령의 대일 외교 성적을 매길 때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준규 전 대사는 “지금 윤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면서 “일본 내 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있는 만큼 일본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평가해야지, 지금 시점에서 자꾸 손익 계산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유흥수 전 대사도 “4월에 일본 지방선거가 있고 하니, 일본 정부에서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엿보이는데, 이번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일본 내 극우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평가도 있고 일본에서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일본의 상응 조치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라종일 전 주일대사

“국민 공감 얻는 노력해야”
전직 주일대사들은 윤 대통령이 앞으로 국민들의 공감을 얻는 데 애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라종일 전 대사는 “한·일 문제는 국민 정서를 무시하고 정치 지도자나 외교관들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앞으로의 한·일 협력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흥수 전 대사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일본의 호응 조치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외교부나 정치권, 특히 여당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각수 전 대사는 “반일 감정이 아직 남아있다 보니 내년 총선 때문에 한·일 간 무언가를 하는 데 있어 국내적 제약이 생길 가능성은 있다”며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만나고, 정부 정책 홍보를 제대로 하는 동시에 일본이 화답하는 조치를 내놓을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창일 전 주일대사

강창일 전 대사는 “윤 대통령이 자꾸 문재인정부 때를 거론하며 남 탓을 하는데, 그 당시는 상대가 아베 정권이었고, 한·일 관계 악화의 원인은 아베 정권의 강력한 반한(反韓) 정책이었다”면서 “꼭 우리(문재인정부)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내부 총질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재개 같은 것들도 쉽게 풀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사안이라 간단하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라며 “여러 복잡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계속 대화를 하겠다고 했으니, 잘못된 것은 고치고 잘 된 것은 이어가면서 일본의 상응 조치를 얻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선 박준상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