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건설업계… 폐수 재사용 넘어 반도체 세척수 국산화까지

입력 2023-03-21 16:51 수정 2023-03-21 18:08
SK에코플랜트가 인수한 자회사 환경시설관리가 운영 중인 경북 경산 공공하수처리시설 전경. SK에코플랜트 제공

건설사들이 그동안 산업현장에서 쓰고 버리기를 반복해온 물을 고부가가치 원자재로 업사이클링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의 물 산업 밸류체인은 폐수 처리나 단순 재사용을 넘어 반도체 세척에 꼭 필요한 고순도 공업용수인 초순수로 재탄생시키는 데까지 확대됐다.

SK에코플랜트 에코랩센터 물 담당임원인 호재호 부사장은 ‘세계 물의 날’을 하루 앞둔 2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옛날엔 지구상에 있는 물이 주기에 맞춰 순환하는 걸로 충분했지만 현대사회에 와서는 물 이용이 너무 많아졌고 기후변화 때문에도 제약이 많이 생겼다”며 “그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재이용이라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호 부사장은 2011~2018년 미국 플로리다주에 본사를 둔 고도 정수 및 폐수 처리 솔루션 제공업체 ‘사프본 워터 테크놀로지’에서 수석연구엔지니어와 팀장으로 근무한 물 전문가다. 사내에선 ‘물 박사’로 불린다.

SK에코플랜트는 국내 건설사 중 물 산업 포트폴리오 구축에 가장 적극적인 회사다. 2020년 국내 수처리 및 폐기물 처리 전문회사인 환경시설관리 인수를 시작으로 환경·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빠르게 변신했다. 2021년 5월에는 사명(SK건설)에서 아예 ‘건설’을 빼고 ‘에코(친환경)’를 새겨넣었다. SK에코플랜트는 기존 하·폐수 처리 중심에서 용수 공급과 고도 정수처리, 초순수 생산까지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물 산업 포트폴리오를 확장 중이다.

호 부사장은 “기존에는 물을 주로 비용 측면에서 접근했는데 이제는 원자재로서 가치가 있는 물을 만드는 분야를 하려는 것”이라며 “그 중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분야가 반도체 제조 공정에 쓰이는 초순수 생산”이라고 말했다.

김병권 SK에코플랜트 에코랩센터 대표(오른쪽)와 염충균 세프라텍 대표가 지난달 7일 초순수 생산 핵심 기술 중 하나인 탈기막 기술 공동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 협약식 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SK에코플랜트 제공

각종 티끌과 유기물 등 불순물을 싹 걷어낸 초순수는 공장에서 반도체 표면을 깨끗이 씻어내는 데 쓰이는 필수재다. 반도체 밑판인 지름 150㎜짜리 웨이퍼 1장을 깎아내는 데 1t 이상 필요한데 한국은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는 초순수 국산화를 추진 중이다. SK에코플랜트는 물 속 산소농도를 낮추는 특수 분리막(탈기막) 개발에 참여했다.

해수담수화를 비롯한 수처리 사업도 국내 건설사들이 ‘물’에서 기회를 찾는 분야다. GS건설은 2012년 인수한 수처리 전문기업 GS이니마를 통해 오만과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을 중심으로 해수담수화 사업을 확장 중이다. DL이앤씨도 탈탄소 솔루션 자회사 카본코를 앞세워 사우디아라비아 해수담수청과 협약을 맺고 현지에 진출했다. 한화 건설부문은 수처리시설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며 단순 시공을 넘어 친환경 디벨로퍼(개발사)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물 부족 위기 시대에 한정된 수자원을 더 많이,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순환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수처리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로 물은 자원이 됐다”며 “기후 변화 대응으로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재이용과 무방류, 바이오 에너지 등 원자재로의 물 생산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