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나의 신앙]원우현(16)선배가 불쑥 “나도 이제 교회 나가야겠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입력 2023-03-20 08:18 수정 2023-03-20 19:27
오기선 요셉 장학회 장학금 신청 전에 만나 중보 기도를 드렸다. 왼쪽부터 필자, 몽골예배 담당 가나 목사, 삼당잠츠 대학생.

며칠 전 주일이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모이는 ‘한터’에서 예배를 다녀오던 중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진 고교 선배를 우연히 만났다.

영하의 날씨인데 어디 다녀 오느냐고 인사를 해 교회 예배를 드리고 오는 길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선배는 불쑥 “나도 이제 교회를 나가야겠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교회에 나가시려면…”이라는 말로 반응했다.

내 말은 어느새 전도할 때처럼 빨라지고 있었다.

순간 선배는 “아 참, 내 아내가 천주교를 믿다가 가서 나도 천주교회를 나가야 아내를 만날 것 같네”하면서 내 말을 끊었다.

“그럼 잘 되셨군요. 부인을 따라 천주교회에 나가시면서 주님 만나세요. 안녕히 가세요.”

사실 나는 교회 장로로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가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다.

그 선택의 결과가 같은 건지, 다른 건지 간단한 설명도 하지 못하고 자리를 뜬 것에 대해 영적 무력감을 느꼈다.

그래도 선배가 부디 예수를 믿어 천국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오기선 요셉 장학회 신년 모임에 참석한 필자.(앞줄 오른쪽 세번째)

그 선배와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데 문득 김정수 신부님이 생각났다.

예전에 나를 ‘미아리 수녀원’ 연사로 초청해 주신 분이다.

청중 모두 즐겁게, 함박웃음으로 호응해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별로 흥미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여기가 바로 천사의 집이 아닌가”라는 묘한 감동을 받았다.

부산 지역 신부들도 특강 강사로 초청해 주셨다.

이번에는 자유로운 분위기에 마음이 끌렸다.

결혼생활도 없는 경직된 성직자들, 가톨릭 신부에 대한 생각을 바뀌는 계기가 됐다.

최근 김정수 신부님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제가 회장을 맡고 있는 ‘오기선 요셉 장학회’를 통해, 저는 외국인 근로자 한국어 말하기 대회 심사 후기에 대한 원 장로님 서신을 읽고 꿈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원 교수님. 혹시 외국인 대학생이나 중·고등학생, 소년소녀가장으로 학업을 해야하는 학생을 아시면 제게 연락을 주십시오. 제가 도와주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학생에겐 대학생 한 학기 300만 원, 1년 두 학기 6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합니다.”

천주교 장학재단에서 개신교 장로교회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겠단다. 놀라웠다.

고아나 소년소녀가장, 조건만 맞으면 종교와 학업 성적에 상관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어느 종교든지 서로 연대하는 마음이라는 내용이 내 마음을 울렸다.

나는 해외선교 활동 중인 몽골 교회에 수소문했다.

몽골 게르 교회 중 계시록 교회 아지트 목사님에게 대상자를 알아보라고 청했다.

아지트 목사님은 몽골 대상자 대신 서울 온누리교회 서빙고 몽골예배를 진행하는 가나 목사님을 추천했다.

가나 목사님은 몽골에서 양부모가 사망해 고아가 된 대학 2학년생을 추천했다.

사연을 들으니 가나 목사님은 자신의 혈육이 3명 있는데도 고아를 4명 입양하고 양육하며 예수님을 가르친다고 했다.

심사 기준에 따라 부모 사망 진단서를 제출받았다.

한국어로 번역한 구비서류를 ‘오기선 요셉 장학회’ 재단에 우송했다. 결과를 기대하면서….

나는 여전히 천주교의 교리나 실태를 잘 알지 못한다. 설득력 있게 설명할 자신도 없다.

그래도 고교 선배와의 짧은 대화 덕분에 그 옛날 수녀들의 소박하고 넉넉한 웃음소리와 신부들의 여유 있고 소탈한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이들의 선한 인상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어떤 종교이든 학습능력이 어떠하든 상관 없고 오직 고아와 버려진 자’라는 자격이면 장학생으로 충분하다는 ‘오기선 요셉 장학회’ 선발기준이 맘에 들었다.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시 146:9)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