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브로커와 공모해 뇌전증으로 병역면탈을 시도해 기소된 스포츠 선수들은 대부분이 최초 병역판정검사에서는 신체등급 1등급 현역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병역브로커가 정해준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를 하면서 4급 이하 판정을 받아냈다. 이들 중 다수가 게임을 하다가 발작을 일으켰다고 말하는 등 시나리오도 비슷했다.
국민일보가 16일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뇌전증 병역면탈자 42명에 대한 서울남부지검의 공소장에 따르면 배구선수 조재성을 비롯해 축구선수 2명, 조정·승마·육상선수 각 1명, 골프코치 1명, 체육인 1명 등이 기소됐다. 이중 육상선수(2급)와 체육인(4급)을 제외한 6명은 모두 첫 신검에서 1등급을 받았다.
공소장에 따르면 배구선수 조재성은 2014년 10월 23일 최초 병역판정에서 1급 현역 입영대상 판정을 받았다. 이후 2018년 5월 30일에는 피부과 질환을 사유로 3급 현역 입영대상 판정을 받자 그해 12월 질병을 이유로 연기했고, 2019년 10월에 또 질병을 이유로 3급을 받자 학점은행제 수강을 사유로 입영을 연기했다. 이에 조재성은 2020년 12월 27일 병역브로커 구모씨에게 5000만원을 주고 뇌전증 병역면탈을 시도했고, 2022년 2월 9일 병역판정검사에서 경련성 질환으로 보충역 4급 판정을 받았다.
축구선수 A씨와 B씨도 각각 2013년 9월, 2018년 10월 최초 신체검사에서 1급 현역판정을 받았다. A씨는 2018년 재병역판정검사에서 신체등급 3급 현역 판정을 받자 질병과 단기여행 등의 사유로 입영을 미뤄오다 2022년 9월 병역브로커와 접촉해 6000만원을 주고 범행을 공모했다. 이후 뇌전증 연기를 한 뒤 11월 재신체 검사대상인 7급을 받아냈다. B씨는 역시 2022년 1월 브로커와 접촉해 뇌전증 연기를 공모한 뒤 8월 전시근로역인 5급 판정을 받았다.
스포츠 선수들의 공소장에는 ‘게임’이 자주 언급됐다. 조재성은 2020년 12월 병원 응급실 의사에게 “마루에서 컴퓨터 게임하고 있던 중 발작이 있었다”며 “올 1월쯤에도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취지로 말했다. A씨도 “2년 전 한 번 발작했으나 검사하지 않았고, 오늘(2022년 9월 6일) 운동을 마치고 컴퓨터 게임을 하며 쉬다가 기절하고 발작을 했다”고 말했다.
2012년 첫 신검과 2017년 재검에서 모두 1급을 받은 골프코치 C씨 역시 2020년 병원에서 “앉아서 게임하던 도중 약 7분 동안 발작이 있었다. 멍한 상태로 팔다리에 힘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2016년 6월 1급 판정을 받은 승마선수 D씨는 2020년 6월 병원에서 브로커 구씨를 ‘삼촌’이라 칭하며 “삼촌 집에서 컴퓨터를 하다가 발작을 일으켰다” “게임하다가 뒤로 넘어가는 발작 증상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남부지검과 병무청 합동수사팀은 지난 13일 병역 브로커 2명, 병역면탈자 109명, 공무원 5명 및 공범 21명 등 총 137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날 공개된 공소장은 지난달 9일 먼저 기소된 42명과 공범 5명에 대한 것이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