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면 저렇게 돼”… 갑질의 일상화에 우는 경비원들

입력 2023-03-16 18:27

경비원 A씨는 2021년 7월 서둘러 아파트 정화조로 내려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무슨 일인지도 몰라 경비복 차림 그대로 내려갔다. 경비대장은 관리소장의 지시라며 그에게 정화조 청소를 시켰다. 장화도 신지 못한 채 A씨는 1시간 동안 정화조 청소를 했다. 밖으로 나와서야 발목까지 차올라 있던 게 분뇨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일로 A씨는 이른바 ‘똥독’이 올라 2주 넘게 약을 바르며 치료해야 했다.

경비원 B씨는 자신의 바로 코앞에서 한 입주민이 초등학교 자녀에게 “공부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또 다른 경비원은 분리수거 장소 확보 문제로 입주민에게 주차한 차량을 빼달라고 요청했다가 “경비 주제에 무슨 말을 하냐. 관리사무소에 얘기해서 그만두게 하겠다”는 모욕을 받았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경비원의 근로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일명 ‘경비원 갑질 금지법’이 2021년 10월 시행됐지만, 경비원들은 여전히 ‘갑질’ 속에 근무하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10월 경비노동자와 청소노동자 등 총 9명을 상대로 심층면접을 진행한 결과 공동주택 노동자들이 입주민과 용역회사의 갑질에 노출돼 있었다고 16일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경비원 등이 갑질에 노출되는 근본적인 이유로 ‘간접고용 구조’를 지목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0년 12월 발행한 ‘공동주택 경비근로자 업무 범위 명확화의 고용영향분석’에 따르면 경비원 중 위탁관리되는 단지에서 일하는 경비원은 80%에 달했다. 자치 관리인 경우에도 경비·미화 업무를 용역회사에 하도급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간접고용 비율은 9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관리소장 갑질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70대 경비원도 간접고용 구조로 인한 극심한 고용불안 때문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직장갑질119는 말했다. 또 관리소장과 숨진 경비원이 같은 회사 소속이 아니라는 점은 신고조차 못 하게 막았다고 했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같은 회사일 때 적용된다. 관리소장은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아파트 관리를 위탁받은 B업체 소속이었고, 경비원은 B업체가 경비 업무를 위탁한 C경비업체 소속이었다.

직장갑질119 임득균 노무사는 “관리회사에 경비회사까지 있는 다단계 고용 구조와 다수의 입주민, 관리사무소 등 수많은 ‘갑’으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는 구조에서 경비노동자들은 너무나 쉽게 갑질에 노출된다”며 “갑질 방지 및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