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 이호진, 계열사 김치·와인 강매에 개입” 뒤집힌 판결

입력 2023-03-16 15:52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뉴시스

태광그룹 총수 일가 회사가 생산한 김치와 와인을 그룹 계열사에 강매하는 과정에 이호진 전 회장이 개입했다고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원심은 이 전 회장이 계열사 사이 거래에 관여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이 전 회장과 태광그룹 계열사 19곳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와 시정명령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이 전 회장에 대한 시정명령을 취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공정위는 태광그룹 계열사 19곳이 2014년 4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이 전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휘슬링랑CC(티시스)’, ‘메르벵’에서 생산한 김치와 와인을 고가 매수한 사실을 적발해 과징금 21억8000만원을 부과했다. 이 전 회장에게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티시스는 계열사들에 김치를 10㎏당 19만원 가격으로 총 95억원어치 팔았다. 메르뱅도 계열사들에 와인을 46억원어치 강매했다.

이 전 회장과 태광그룹 계열사는 공정위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원심은 계열사들에 대한 공정위 처분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김치 및 와인 거래 규모가 미미하다고 할 수 없고, 총수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계열사들이 전부 참여한 점 등에 비춰보면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다만 이 전 회장에 대해서는 “태광그룹 경영기획실을 통해 이뤄진 모든 결정사항에 이 전 회장이 관여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시정명령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계열사뿐만 아니라 이 전 회장에 대한 공정위 처분도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전 회장이 김치와 와인 거래에 관여했다고 볼 여지가 많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김치 거래는 변칙적 부의 이전과 태광그룹에 대한 지배력 강화, 아들에 대한 경영권 승계에 기여했다”며 “이 전 회장은 티시스의 이익과 수익구조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 영향력을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었다”고 했다. 태광그룹 경영기획실이 이 전 회장 모르게 김치 거래를 할 동기가 없는 점도 판단에 고려됐다. 와인 거래 역시 그 구조와 방식이 유사하다며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