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9개 역사 관련 학회와 단체가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 배상 방법으로 내놓은 ‘제3자 변제’에 대해 “헌법정신과 보편적 가치에 어긋난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국내 49개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는 15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윤석열 정부를 향해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의 사죄 없는 배상안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성명서에서 “이번 정부의 배상안에 의하면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은 침략과 강권의 식민지배를 반성하지 않아도 된다”며 “윤석열 정부의 배상안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한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서 3.1운동을 국가 건립 이념으로 밝히고 있다.
또 “대법원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근거하여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직결된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준엄히 심판했다”면서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배상안은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의 반인도적 행위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인류의 보편적 가치, 평화와 인권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이웃 국가와 협력해야 한다는 대의를 환영한다. 과거사가 현재와 미래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지 않고서 어떻게 평화롭고 인권을 존중하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의 사과와 배상에 대한 어떠한 보장도 없이 피해자에게 돈을 지급하는 방안은 아무런 반성 없는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줄 뿐”이라면서 “이는 대한민국과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고 했다.
이어 “사법부의 판단을 사실상 무력화한 행정부의 결정이 삼권분립을 위반한다”며 “민주주의 정신을 퇴색시키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심각한 우려를 전달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일본 기업에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2018년 11월 29일에 판결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이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고, 외교적 갈등을 우려한 한국 정부가 강제 집행을 미루면서 판결 이행이 지체돼 왔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6일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재단의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해결 방안을 내놔 논란이 됐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