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는 사적연금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세액 공제 혜택과 한도를 늘리는 식으로 사적연금의 몸집을 키워 국민연금 공백을 채우겠다는 구상으로 분석된다. 다만 인구절벽 심화로 국민연금의 고갈 속도가 더 빨라지면 국민들이 별다른 대안 없이 연금공백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12년 7월 개인형 퇴직연금(IRP)을 새롭게 도입했다. IRP란 근로자가 이직·퇴직했을 때 퇴직금을 근로자 개인이 별도로 은퇴할 때까지 운용할 수 있게 한 퇴직연금으로, 개인퇴직계좌(IRA)를 대체하는 개념이다. 여러 직장을 옮기더라도 퇴직금을 한 계좌에 모아두었다가 노후에 연금으로 수령하기 위한 용도로 신설됐다.
정부는 각종 혜택을 바탕으로 IRP 규모를 키워왔다. 2015년부터 연금저축과 합산해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적용했고, 올해부터는 이 한도를 900만원으로 올렸다. 연급여 5500만원 이하인 근로자가 지난해 IRP에 700만원을 입금했으면 올해 연말정산에서 115만5000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900만원을 IRP에 입금하면 내년 초 연말정산에서 148만5000원을 공제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이런 혜택에 힘입어 IRP는 퇴직연금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IRP 적립금은 2016년 12조4000억원에서 2021년 46조5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에 따라 2021년 퇴직연금 적립금은 295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40조1000억원(15.7%)이 증가한 수치다. IRP를 포함한 퇴직연금 가입을 장려해 국민연금의 해법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다만 퇴직연금이 ‘노후 안전판’이 되기엔 갈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을 2.0% 가량이다.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을 낸 셈이다. 퇴직연금의 최근 10년 간 연 환산 수익률도 2.39%에 그치고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80%가 넘는 돈이 은행 예·적금 등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운용됐기 때문이다. 또 퇴직연금 수급대상자의 98% 가량이 연금 대신 일시금으로 돈을 타고 있다. 그만큼 퇴직연금이 노후소득 보장 수단이라는 인식은 아직 약한 상황이다.
사적연금 시장이 커지기 전에 국민연금 곳간이 먼저 빌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저출산 고령화와 인구절벽 탓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총인구는 2020년을 정점(5183만명)으로 2070년(3766만명)까지 가파른 감소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전년 대비 인구성장률은 2030년을 기점으로 마이너스(-) 성장이 심화되면서 2070년까지 –1.24%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2199만명인 국민연금 가입자는 2060년 1251만명까지 줄어드는데 연금 수급자는 같은 기간 527만명에서 1569만명으로 3배 가량 늘어나게 된다.
정부의 예상대로 2055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미래 세대는 연금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연금을 가입자에게 다 주기 위해선 소득 중 내야 하는 연금보험료 비율을 올려야 하는데, 그 비율이 2060년 최대 29.8%에서 2078년 35%까지 올라가게 될 전망이다. 한 사람이 매달 버는 돈의 30% 가량을 국민연금 비용으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퇴직연금을 비롯한 사적연금이 국민연금의 대체재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도록 수익률 개선 방안 등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