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향년 51세) 작가가 숨지기 직전 법원에 “저에게 검정고무신은 제 인생의 전부이자 생명”이라며 “창작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의 진술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정고무신 저작권을 두고 출판사와 3년 넘게 법적 분쟁을 해온 이 작가는 지난 1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작가는 생전에 가족들에게 ‘사람이 죽어야 이슈가 될까’라는 말도 종종 했다고 한다.
유족 등에 따르면 이 작가는 2019년 6월 출판사 대표 장모(53)씨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출판사 형설앤 측은 이 작가와 동생 이우진 작가 등을 상대로 2억86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장씨가 이 작가를 비롯한 검정고무신 원작자들과 계약을 통해 저작권과 사업권을 가져갔는데, 이 작가가 장씨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사용했다는 취지다.
이 작가가 생전에 맺은 사업권 설정 계약서에는 “검정고무신에 대한 모든 사업에 대한 권리를 장씨에게 위임한다” “출판하고자 하는 책에 대해선 장씨가 우선권을 가진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작가는 미공개 원고에서 “장씨가 마치 자신이 검정고무신을 만든 원작자인 양 행세하기 시작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만화계에서는 원작자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불공정 계약’ 관행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판사에 저작권을 넘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 작가는 그동안 신인이 참가하는 만화 공모전에 응모해 겨우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 유족 측은 출판사 측이 이 작가에서 정산한 금액이 1000만원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작가의 아내는 “재판에서 희망적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결심이) 계속 지연돼 크게 낙담했다”며 “사망 이틀 전 열린 재판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자 남편이 밤늦게 취해서 들어왔다”고 전했다. 또 “소송을 하면서 남편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며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던 것 같다. ‘사람이 죽어야 이슈가 될까’라는 말을 가끔 했다”고도 전했다.
이 작가는 지난 9일 법원 변론기일에 출석한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작가가 마지막으로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는 “저에게 검정고무신은 제 인생 전부이자 생명”이라며 “창작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호소가 담겨 있다고 한다.
출판사는 저작권과 관련해서는 정당하게 법적으로 맺어진 계약이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해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