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 라운드 탈락의 씁쓸함을 안고 14일 조기 귀국했다.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이 놓친 건 성적만이 아니었다. 젊은 선수들이 ‘승리의 맛’을 보지 못하면서 세대교체 기회까지 날려 보냈다. 그러나 비탄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다. 다가오는 일련의 국제 대회에서도 변화하지 못한다면 3년 뒤 WBC도 또 한번의 참사로 기록될 수 있다.
이강철 대표팀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 관계자들은 14일 오후 5시 20분쯤 인천공항 입국장에 도착했다. 굳은 표정으로 마스크를 쓴 채 문을 빠져나온 선수들은 별도 인터뷰 없이 자리를 떴다. 불과 열흘가량 전 전의를 불태우며 일본으로 출국하던 때와는 180도 달라진 풍경이었다.
취재진 카메라 앞에 선 이강철 감독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죄송하다는 것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선수들은 열심히 준비 잘 했다”며 “저를 비난해 달라. 선수들은 야구를 또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대표팀의 선수단 구성은 대회가 시작도 하기 전부터 뜻하지 않은 관심을 받았다. 그 한 축을 이룬 이슈가 안우진의 엔트리 탈락이었다면, 다른 한 축은 세대교체였다. 언뜻 별개의 두 가지 사안으로 보였지만 사실 그 기저에 깔린 문제의식은 같았다. 퇴역을 앞둔 현 대표팀 고참들처럼 향후 10년 이상을 책임져 줄 스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조기 탈락이 확정된 지금 이강철호는 현재와 미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셈이 됐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젊은 타자들의 활약상은 일부 선배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정후와 강백호는 물론, 대회 탈락이 확정된 뒤인 중국전에야 처음 선발 라인업에 든 김혜성 최지훈까지도 좋은 활약을 폈다. 연습경기와 평가전에서 기량을 입증한 후보 선수에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은 용병술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결은 다소 다르나 마운드 역시 원활한 세대교체에 실패했다. 젊은 투수들을 여럿 선발한 점은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정작 이들 중 일부에게만 부담이 지나치게 몰렸다. 정철원 원태인은 대표팀이 치른 본선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했다. 반대로 김윤식과 이의리는 제 손으로 위기를 극복해보지도 못한 채 국제무대를 마감했다.
그 사이 국제무대 선전을 이끌었던 주역들의 퇴장은 현실화됐다. 2009년 제2회 WBC 때 대표팀 막내였던 ‘캡틴’ 김현수는 전날 중국전 승리 직후 공동취재구역 인터뷰를 통해 국가대표 은퇴를 밝혔다. 그 밖에도 박병호를 필두로 양의지와 김광현 양현종 등 대표팀 단골 멤버 여럿이 차기 WBC엔 나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내년까지 예정된 세 차례 국제대회가 갈림길이다. 오는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11월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그리고 내년 프리미어 12가 차례로 열린다. 이들 대회를 통해 20대 선수들이 확실한 주축으로 발돋움하지 않는다면 3년 뒤에도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거란 지적이 나온다.
도쿄=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