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을 다니던 10대 자매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A씨(60)는 1심 공판이 6번 진행되는 동안 재판부에 반성문을 30여차례나 제출했다. 자매의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을 악용해 파렴치한 범행을 저지른 그는 잇따라 반성문을 내면서도 ‘합의된 성관계’라는 주장은 이어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일부 사실관계를 자백하고 있으나 합의된 관계를 주장하는 등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대검찰청 공판송무부(검사장 김선화)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대검에 보고된 주요 성범죄 판결문 91건을 분석한 결과 반복적인 반성문 제출이나 기부자료 제출을 ‘진지한 반성’ 요소로 인정한 판결은 없었다고 14일 밝혔다. 성범죄 피고인들이 반성문 물량공세로 감형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면서 ‘성범죄 감형 패키지’를 내건 법무법인이 성행하고 반성문 대필 서비스까지 등장했지만 정작 재판에서는 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식의 법정 태도나 변명 등을 이유로 피고인 반성의 진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판결문은 35건에 달했다. 단지 자백만 했을 뿐 합의나 피해 회복 노력을 하지 않아 ‘반성’이라는 단어가 빠진 판결문은 29건이었다. 반성이 감형 사유로 판결문에 들어간 사례는 27건이었는데, 범행을 자백한 뒤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공탁 등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한 경우였다.
대검은 “양형기준상 ‘진지한 반성’은 범행을 인정한 구체적 경위, 피해 회복 및 재발 방지 노력 여부 등을 조사한 결과 피고인이 진심으로 범행을 뉘우치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의미한다”며 “단순히 반성문이나 기부자료를 반복 제출한 사정만으로는 인정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검은 지난해 6월 성범죄자들의 ‘꼼수 감형’ 시도가 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일선 검찰청에 수사·재판 중 제출된 각종 양형자료의 진위를 확인해 재판부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허위 양형자료는 엄단하라고 지시했었다. 앞으로도 부당한 양형자료가 감형 사유로 악용되지 않도록 면밀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