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호 ‘침몰’ WBC 3연속 조기탈락…드러난 한국야구 수준

입력 2023-03-13 17:06 수정 2023-03-13 21:53
지난 12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 1라운드 B조 한국과 체코의 맞대결 도중 한국 대표팀의 정현욱 투수코치(왼쪽)와 이강철 감독이 심각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야구 국가대표팀이 6년 만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다시 한번 고배를 마셨다. 첫 경기 호주전 패배의 여파를 결국 극복하지 못한 채 3회 연속 조별 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상향 평준화되는 세계 야구판에서 홀로 퇴보하는 민낯을 드러냈다.

호주는 13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WBC 본선 1라운드 B조 경기에서 체코에 8대 3으로 승리했다. 중반까지 투수전 양상으로 흐르던 양 팀의 경기는 7회와 8회 호주가 합계 5점을 뽑아내며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이날 승리로 호주는 조별 라운드 합계 전적 3승 1패째를 기록하며 조 2위로 8강전 진출을 확정지었다. 호주가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하지 않고 상위 토너먼트에 진출한 건 WBC 사상 처음이다.

호주의 승리는 곧 한국의 탈락을 뜻했다. 최종전인 중국전 시작까진 3시간도 더 남았는데 곧바로 귀국 비행기 편이 정해졌다. 2013년 3회 대회 이후 3연속 WBC 조별 라운드 탈락이자 최종 엔트리 발표 68일 만에 이강철호가 좌초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1주간 대표팀이 보여준 경기력은 팬들의 눈높이에 한참 못 미쳤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랭킹 세계 4위이자 올림픽 우승·WBC 준우승 경험국이란 이름값에도 턱없이 모자랐다. ‘첫 단추’ 호주전과 숙명의 한일전에선 마운드가 바닥까지 붕괴했고 체코전에선 타선이 초반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데다가 수비 실수까지 겹치며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이번 대회로 야구 대표팀의 참패는 더 이상 이변이 아니게 됐다. 일부 투수들은 반드시 스트라이크를 집어넣어야 하는 상황에서 존 안에 공을 못 집어넣었고, 타선에선 일부 베테랑들이 빈타에 시달리는 데도 마땅한 대체자가 없었다.

이들이 소속팀에서 리그를 호령했다는 사실은 새삼 프로야구의 현주소를 주지시켰다. 지난 10년 새 구단 수가 늘었고 외국인 쿼터가 확대됐고 연봉이 올랐다. 커진 덩치에 비해 질적인 성장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거듭된 국제대회 부진이 이 같은 진단을 뒷받침했고, 이강철호의 침몰로 마침표를 찍었다.

한 수 아래로 깔봤던 상대들은 그동안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호주와 중국 마운드엔 시속 150㎞를 던지는 투수들이 포진했고, 사회인이 대거 포함된 체코 타선은 이들을 맞아 대등하게 싸웠다. 비단 B조에 한정된 얘기도 아니었다. A조에선 대만과 네덜란드, 쿠바뿐 아니라 이탈리아·파나마까지 5개국 모두가 2승 2패로 동률을 이뤘다.

이강철 감독 이하 코치진도 조기 탈락 책임론을 피할 순 없다. 대표팀의 조별 라운드 경기에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나 상대의 흐름을 끊는 반 박자 빠른 투수교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과론적인 면도 있지만, 당장의 컨디션보다 이름값을 앞세웠던 선수 기용도 실패로 돌아갔다.

‘도쿄 참사’의 원인은 명백했다.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못해서’ 졌다. 최근 수년간 이어져 온 국제무대 부진이 사실은 실력 부족 때문이었다는 게 다시 입증된 것이다.

도쿄=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